558. 치매를 보는 다른 관점

by 장용범

치매는 뇌 세포와 뇌혈관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결릴 수 있는 병이라고 한다. 이것은 좀 우울한 이야기다. 뇌 세포나 뇌혈관이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 다. 나이가 90세 이상이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85%라고 하니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이다. 나는 90세를 넘겨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를 통해 치매라는 병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친인척이나 지인들을 통해 그들 부모의 치매나 만성 질환으로 가족들이 받는 고통을 들을 때가 있다. 인간의 노화를 막을 수는 없으니 제 아무리 높은 직위의 사람이나 큰 부자라 해도 이런 면에서는 평등을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개인적인 호기심이지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모두가 영적 스승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이 있는데 만일 그가 치매에 걸려 횡설수설, 정신없는 행동을 한다면 대중들은 그가 말한 영적 가르침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이다. 실제로 홍익 학당의 윤홍식 원장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도 있는데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만일 영적 스승이 치매에 걸렸다면 전과 후는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외양이 같아 보인다고 해도 그의 가르침은 치매 전후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고 했다.


얼핏 당연한 것 같지만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어제의 마음이 다르고 오늘의 마음이 다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전 재산을 어제는 자녀들에게 상속하겠다고 하고선, 오늘은 마음을 바꿔 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한다면 그의 어떤 생각을 따라야 할 것인가? 상속을 받을 자녀들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의사 판단력을 잃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이를 보면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다 아니 다를 받아들이는 기준은 결국 나에게 있는 것이다. 어떤 계기로 사람이 달라졌다는 경우가 있다. 보통은 그 사람을 달라지게 한 계기에 주목을 하지만 사실 그것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 중 하나이고 달라지고 말고의 주체는 그 자극을 수용하는 당사자이다. 같은 외부의 자극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치매가 심한 노인들의 보기 불편한 행동들을 보면 ‘인간으로 태어나 저리 살아야 한다면 그냥 세상을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로 인한 자녀들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인간 존엄성에 회의가 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치매에 걸린 당사자는 그 사실을 인지 못하니 마음 편할 수도 있다. 치매 노인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런 염려들을 한다. ‘혹시 나도 늙어 저런 상황이 오면 어떡하지?’ 현재의 위치에서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건 본인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건 치매 걸린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문제는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소유하고 그 해결책도 고민하기 때문이다. 죽고 나서 화장을 할지 매장을 할지도 사실 고민거리가 아니다. 그건 남은 자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인의 치매 가능성에 너무 연연할 문제가 아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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