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 사는 게 먼저다

by 장용범

‘삶에 있어 늦은 때는 없다.

그저 나에게 주제가 있느냐 테마가 있느냐,

내 행동과 계획이 지향하는 바를 설명할 수 있는 그 ‘한마디’를 가졌느냐의 문제일 뿐이다.’_김태규의 <산다는 것, 잘 산다는 것> 중에서


예전 삶의 방향성을 잃은 적이 있었다. 뭘 해도 의욕이 안 생기고 그냥 하루 종일 축 늘어져만 있고 싶었다. 사실 의미는 각자가 어떻게 부여하느냐의 문제지만 그 의미를 찾기 힘들 때가 있다. 이때 주의할 것은 의지처를 찾아 맹목적이 되는 것이다. 산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나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으니 의미 없어 보이는 하루가 한심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는 게 꼭 의미가 있을 이유는 없다. 의미란 존재가 있고서 생겨난 것이니 존재보다 우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살아있으니 의미도 찾는 것이지 태어나지 않았거나 이미 죽었다면 의미의 추구란 그야말로 의미 없는 짓이란 얘기다. 그러니 당연히 사는 게 먼저다.


정신의학자 전현수 박사의 인터뷰를 듣다가 과연 그러하다며 감탄한 내용이 있다. 선인낙과, 악인고과는 원인이 선하면 좋은 결과를, 원인이 좋지 못하면 나쁜 결과를 낳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선이란 무엇일까? 이게 참 상대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놓고 봐도 러시아는 서방 NATO의 동진에 따른 자국의 방어 차원이라 하고, 미국이나 당사지인 우크라이나는 침략전쟁이라 규정한다. 각자의 선이 다른 것이다. 전현수 박사는 선한 원인에 대해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을 선이라 했다. 이번 전쟁이 제법 시간을 끌었지만 아직 해결 조짐이 안 보인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침략의 당사자인 러시아는 모든 게 안정적인 반면 경제제재를 가했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경기둔화로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듯 영웅은 악을 무찌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지만 현실의 정의는 선과 악을 가르는 것부터가 애매한 상황이다.


내 행동과 계획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한마디’를 가졌는가의 문제이지 삶에 있어 늦은 때는 없다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설령 그런 방향성이 없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세상 대부분의 문제들은 그런 방향성을 강하게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향일 때 생겨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살아갈 때 이런 필터링을 한 번 거쳐 보자. 첫째, 의미나 방향성은 없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간다는 것이다.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는 의미나 방향성은 좀 접어두어도 좋다. 둘째,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되었다면 다음은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선을 추구하자. 나 좋으라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그럭저럭 잘 사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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