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외국 나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익숙한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작은 모험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일상은 다른 이에겐 낯선 여행이기도 하다. 이번 목적지는 키르기스스탄이다. 이 나라는 직항이 없어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를 거쳐야 한다.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였지만 함께 가는 일행들과 만나기 위해 좀 일찍 나서야 했다. 단체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은 좀 색다른 면이 있었다. 그간 인터넷 신문 ‘유라시아 평론’에서 주한 키르기스스탄 대사관 측과 몇 차례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양측의 신뢰가 쌓였고 이를 바탕으로 여행경비는 우리가 부담하지만 대사관 측에서 현지 편의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여행 일정이 잡혔다. 그냥 좋은 기회다 싶어 톈산산맥을 끼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나라 키르기스스탄으로 떠나기로 했다.
한국시간 6월 26일 오후 세 시, 나는 지금 몽골과 중국의 국경지대를 날고 있다. 비행고도가 10,000 미터인데 아래는 두터운 구름층만 보인다. 비행기 안에서 보는 아래 광경은 마냥 천천히 날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의 비행속도는 시속 800 킬로미터를 넘기고 있다. 게다가 자구의 자전 방향과 반대쪽으로 날고 있어 나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 셈이다. 지금 날고 있는 이곳으로 먼 옛날 실크로드가 열렸고 그 시절 사람들은 낙타를 타고 상단을 꾸려 사막으로 초원으로 그리고 험준한 산맥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나는 그 험난했던 길을 이리도 가볍게 날고 있으니 인류는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기술적 도약을 이루어 낼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50년 전을 돌아보면 대도시라 부르는 부산이었지만 가끔 말이 끄는 운송수단을 볼 수도 있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과정을 실제로 경험하였기에 중년 이후의 한국인들에게는 그 자부심이 남다른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이상하리만치 감흥이 덜 하다. 오히려 설렘보다도 10시간 넘을 비행시간에 부담감이 더한 걸 보면 앞으로 외국여행 다니고 싶은 마음도 언제까지 생겨날까 싶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가지 말고 가슴 떨릴 때 가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짐은 단출하다. 작은 배낭 하나와 기내용 캐리어 가방이 전부인데 아내는 그래도 일주일 넘게 가는 여행인데 짐이 너무 없다며 빠진 게 없는지 잘 챙겨보라고 했다. 몇 차례 배낭여행을 다니며 터득한 노하우 같은 건데 짐을 챙길 때면 하루 일상에 맞추어 시간대별로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떠올려 본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 9시까지는 세면하고 가벼운 운동과 식사를 한다면 거기에 맞는 세면도구와 옷차림을 결정한다는 식이다. 그리고 겨울의 나라로 가는 게 아니라면 두터운 옷도 좀 피하는데 대신 긴팔의 얇은 옷을 여러 벌 가져가거나 조끼를 준비해 부피를 줄이는 편이다. 책도 가능하면 두고 가는데 요즘은 텍스트도 스마트 폰으로 읽는다. 통신은 현지의 유심을 구입해 카톡 등으로 소통하 생활용품 등은 현지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하니 여행 짐은 확실히 이전에 비해 많이 가벼워진 것 같다. 대신 들고 가는 물건들은 정말 필요한 물건이기에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물건들이다.
마침내 중간 경유지인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도착했다. 멀리 톈산산맥의 위용과 푸른 초원지대에 펼쳐진 도시가 이국적인 느낌이 더하다.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은 지금도 유목의 흔적이 있는 나라이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싼 높은 봉우리들이 평균 3,000미터가 넘는 톈산(天山) 산맥으로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자, 이제 여기서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알마티와 우리가 가려는 비슈케크는 비행기로 불과 1시간 정도의 거리지만 경유 편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문득 나는 왜 중앙아사아의 낯선 나라 키르기스스탄으로 가고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그리보면 사람 일은 참 모를 일이다. 앞으로의 9일간은 여행 중 단상들을 중심으로 정리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