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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 공감능력이 부족한 나

by 장용범

아내와 딸들로부터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나로서는 좀 억울한 소리이다. 누구보다도 타인을 잘 이해한다고 여기는데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보는 것보다 제 3자 그것도 곁에서 직접 나를 보는 아내와 딸들이 하는 말이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관한 어느 정신과 의사의 특강 같은 것을 보게 되었는데 나의 성장 배경과 비슷한 면이 엿보였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기억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정말 기억이 거의 안 났다. 아버지의 정을 느껴 본 적은 거의 없고, 어머니의 정을 느낀 기억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두 분에 대한 기억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셔서 하루 종일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사셨다는 기억은 있지만 자식으로서 두 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낀 기억이라곤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나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해할 50대가 되어보니 당시 크게 배운 것도 없고 밑천도 없는 젊은 30대 부부가 자식 셋과 시어머님을 모시고 먹고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어야 했는지 이해도 된다. 게다가 세 번이나 죽을고 비를 넘긴 아버님의 교통사고와 어머님의 큰 수술 등을 보면 두 분의 삶도 결코 평탄한 삶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만은 느꼈다. 아니 귀찮다 싶을 정도의 손주사랑이었다. 어머니는 아이 버릇 나빠진다고 할머니께 뭐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적어도 부모님보다는 할머니가 더 편한 느낌이었다. 이리 보면 나에겐 할머니의 존재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칫 세상에서 자기만 잘난 줄 알고 타인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는 소시오패스적인 인격이 될 법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같은 성장배경을 겪은 동생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가 보다. 아내와 제수씨가 맞장구치는 내용 중에는 각자의 남편들이 자기밖에 모르고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니 말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일단 내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란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은 성장배경과 무관하지 않음도 알겠다. 어쩌면 내 부모님은 당신들의 큰 아들이 두 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낀 기억이 없다고 하면 섭섭해하실 수도 있지만 내가 그리 느꼈다는 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두 분에 대한 원망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어려운 여건에서도 우리들을 잘 키워내셨구나 하는 존경과 고마움이 더하다. 자식들에 대한 애정도 듬뿍 표현하고 생활도 풍족하게 잘 꾸리는 부모였다면 좋았겠지만 그게 말같이 쉬운 일이 아님을 나도 알 나이가 되었다. 지금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개선하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미완의 존재에서 완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하나보다. 그런데 부족한 공감능력을 키우는 게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공감까지는 못해도 그 사람의 처지에서 이해하려는 노력만큼은 해야 할까 보다. 그런데 나도 아내와 딸들에게 못마땅한 게 많은데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있다는 걸 알긴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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