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호우주의보가 내렸다. 아침 산행을 못했기에 운동삼아 걸어서 출근하려 했는데 도중에 폭우를 만날까 염려되었다. 그래도 하루 컨디션을 위해 걷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다행히 비가 오기 전에 회사에 도착했다. 몇 가지 업무를 처리하니 오전 중 잠시 틈이 생긴다. 하늘을 보니 잔뜩 흐려있다. 비도 제법 내리고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문득 정말 문득 멋진 계획이 떠올라 오후 반차가 내고 싶어졌다. 회사 맞은편엔 레지던스 호텔이 있는데 그곳 최상층의 런치메뉴가 과하지도 않고 적정한 가격이다. 전화를 해보니 오후 2시까지는 런치 타임이라고 했다. 그럼 오후 반차를 내고 직장인들이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는 1시경에 식사를 하러 가는 거다. 그리고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는 후식으로 나오는 커피 한 잔을 하며 비 내리는 거리 풍경을 감상하면 어떨까 싶었다. 내가 오전에 있었던 회사 건물을 내려다보면서 말이다. 정말 멋진 아이디어 같아 반차를 내었다. 밖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점심시간이 지난 23층 라운지에는 한적함과 조용한 음악이 흘렀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맘껏 누렸다. 요즘 들어 큰 지장만 없다면 해야만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비중을 좀 늘리려고 한다. 그게 별것 아니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카톡으로 문자가 하나 왔다. 오후 세 시에 초대받지 않은 스케줄이 하나 있긴 했다. 광화문 KT 본사에서 열리는 키르기스스탄 투자 설명회였다. 그 행사에 참석하려는 분의 문자였다. 그런데 초대받은 인사들만 가는 것 같다며 일단 행사장에 가서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여행 다녀온지도 얼마 안 되었고 대사님을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 그 행사에 가볼까는 마음이 생겼다. 대사관 경제 참사관에게 연락을 했다. 유라시아 평론의 기자 자격으로 취재 가려는데 가도 될까라고 물으니 답변이 “Of Course!”다. 음악 들으며 비 오는 거리 풍경을 감상하는 분위기를 뒤로하고 광화문으로 갔다. KT 신사옥은 처음이다. 12층 행사장을 가니 한복을 입은 대사님이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으셨다. “Congrtulation! “하고 인사를 건네니 반가이 맞아 주신다. 이번 행사의 중요성 때문인지 키르기스스탄 정부에서도 경제 관련 인사들을 제법 파견한 것 같다.
키르기스스탄의 풍부한 수자원과 깨끗한 자연환경, 인구의 57%가 30대 미만인 젊은 나라, 중앙아시아에서는 가장 민주적인 국가이며 각종 세제혜택과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들은 유럽과 미국 시장에 무관세로 수출 가능하다는 장점 등을 투자의 매력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단점도 많다. 우선 600만이라는 인구 규모는 기업이 대규모로 투자하기엔 그리 많은 인구가 아니다. 구매력도 낮고 현금 결제가 70% 정도라고 하니 투명하지 않은 지하경제 규모도 만만찮을 것이다. 정부에서는 IT 선진국인 한국의 투자를 희망하고 있지만 사실 대규모 건설 인프라 등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물류상 더 유리해 보인다. 자료에 나타난 거래규모로 보나 오는 9월에 중국과 대륙철도건설 계약을 맺는다는 팩트로 보나 대부분의 경제가 중국에 많이 의존하는 형태일 것이다. KT에서는 이제 키르기스스탄 투자를 결정한 것 같은데 전기계량기 교체사업과 전력 데이터 관리 사업 정도인 것 같다.
So What? 그래서 어쩌라고. 사실 개인들에겐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이고 나의 경우엔 다른 이유로 저 나라에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저렴한 인건비, 낮은 물가, 아름다운 자연 때문이다.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 대상으로 많은 돈 벌려고 말고 개인투자자라면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된 나라 사람들로서 키르기스스탄 나라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는 봉사의 마음으로 접근하는 게 현명하다”는 어떤 분의 조언이 더 공감되는 걸 보면 나에겐 아직도 감성이 좀 남아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