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8. 시간에 대한 생각

by 장용범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영화 가운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게 있었다. 제목 그대로 태어나자마자 이내 죽을 것 같은 노인의 얼굴을 한 주인공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젊어지더니 마지막엔 뿅 하고 사라지는 것으로 영화가 끝났다. 인간에게 시간은 참 익숙하면서도 알 수 없는 대상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물리학자들 조차 ‘잘 모르겠다’고 할 정도라니 이게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오늘 오후 5시에 시계탑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치자. 이건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계의 시침이 12의 숫자에, 분침이 5의 숫자를 가리키는 사건과 너와 내가 만나는 사건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여자 친구 데이지의 교통사고를 설명하며 ‘상호작용’이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공간에는 수많은 상호작용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 상호작용에 나도 한몫 거드는 것을 살아간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아침에 아내가 빵과 샐러드를 먹자기에 난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지금 아내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다. 만일 내가 아내의 말에 ’ 그러지, 뭐’라고 했다면 우리의 아침은 비교적 간단한 빵과 샐러드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여러 사건들이 상호작용을 하며 동시에 일어나는 일들이 있을 뿐 정확하게 시간이란 이런 것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물리학적으로는 어떤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내가 시속 800 킬로의 비행기를 타고 가며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을 보면 그냥 별 움직임 없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상에서 나의 비행기를 보는 사람에게는 비행기가 무척 빠른 속도로 휙 지나가는 게 보인다. 상대성 이론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는 게 아니다. 비행기 안의 사람에게는 천천히 흐르지만 지상의 사람에게는 빨리 흐르는 게 시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시간을 가진 두 사람이 동시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A-B-C, A가 먼저 일어나고 이를 받아서 B가 일어나고 B를 받아서 C가 일어난다. 마치 불교의 연기법을 물리학적으로 풀이한 것 같다.


과학자들은 시간이나 동시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을 못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을 하고 있다. ‘시간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가?’ 여기 깨어진 유리병이 있다. 이들 병조각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다시 멀쩡한 유리병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시간의 방향은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미인이라도 쭈글쭈글 늙어가게 마련이고 산해진미의 맛난 음식도 상하고 썩어간다. 지금 어떤 대상이 똑똑하고 단단하고 뭔가 뚜렷함이 느껴진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느슨해지고 흐리멍텅해지는 방향으로 가게 마련이다. 이게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다.


시간이 뭔지도 모르는데 시간이 흘러간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냥 시간의 개념을 변화라는 것으로 보자. 무상(無常), 즉 모든 것은 변해간다. 뚜렷했던 개체는 사라져 점점 전체의 일부가 되는 방향으로 변해간다. 잠시 거꾸로 흐를 때도 있지만 전체 흐름으로 보면 결국 하나의 큰 것에 편입되고 만다. 그걸 우주라 부르든, 종교적인 신이라 부르든, 해탈과 열반이라 부르든 그렇게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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