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 탑건, 매브릭을 보다

by 장용범

퇴근 후 ‘탑건’을 보았다. 정확하게는 ‘탑건, 매브릭’이다. 탑건은 나의 인생작이라 할 만큼 감명 깊은 영화이다. 영화의 기승전결보다도 그저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비행장면이 보는 내내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영화의 속편이 개봉된다기에 관람이 좀 망설여졌다. 1986년 개봉 후 거의 36년 만인데 당시 싱싱하던 톰 크루즈는 이제 60이 되었고, 그 영화를 보며 감동받았던 대학 2학년생은 배 나온 중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첫사랑을 간직하고 있는데 36년이 지나 실물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살다 보면 꼭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는 게 좋은 것이 있다. 탑건이라는 영화도 내게는 그런 영화였나 보다.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머물지 않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산울림의 노래처럼 언젠가는 가고 마는 푸르른 청춘이다. 어디 청춘만 그러할까. 인생도 마찬가지다. 후회 없는 인생이라는 말을 한다. 마지막 눈을 감을 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는 주어진 시간을 가장 잘 보낸 사람일 것이다.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의 아쉬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들은 살면서 했던 일보다는 하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다고 한다. 그때 좀 더 용기를 내어 다가갔어야 했는데. 조금 힘들더라도 그 일을 했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 같은 것이다.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의 뇌는 미래를 항시 염두에 두는 특성이 있나 보다. 그것이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긴 한데 개인들에게는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제어장치이기도 하다. 그런 제어장치는 나이 들수록 더 강화되는 면이 있다.


‘못 먹어도 고!’는 고스톱 판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개인의 성향은 노름판에서도 드러나는지 나는 ‘못 먹어도 고!’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확실한 것을 챙기며 따박따박 가는 것을 택하지 절반의 가능성을 보고 “고!”라고 외치진 않는다. 그러니 30여 년의 직장생활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고!”라고 외치는 기회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땐 일단 하는 것으로 하고, 갈까 말까 주저할 땐 가는 것으로 해본다. 제어장치를 일부러 조금 느슨하게 두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변화로도 얻는 것이 참 많다. 그리고 그 느낌이 좋다. 청년처럼 조금씩 내가 확장되고 성장되는 것 같다. 마치 교관의 역할을 해야 할 매브릭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적진에 뛰어드는 것 같은 살아있는 느낌이다. ‘그땐 그랬었지’라며 인생 회고로만 산다면 살아도 살아있는 삶이 아닐 것이다. 지금 내 여건에 맞는 어떤 활동이 나와야 한다. 그게 삶이다.


‘탑건, 매브릭’을 보며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적진에서 매브릭의 비행기가 격추되었을 때 나는 그가 죽기를 바랐다. 60세의 파일럿 톰 크루즈가 영화에서 사라지듯 나의 탑건도 그렇게 기억의 한 장면으로 남길 바랬나 보다. 살다 보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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