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 토요일, 어느 배움터

by 장용범

모처럼 <그리스와 지중해 여행> 모임에 참석했다. 이 모임은 작년 <1인 창직> 과정 진행자셨던 정은상 선생이 소개해 주셔서 두 차례 정도 참석했었다. 합정동 <그릭조이>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에 모여 세미나를 하고 와인을 곁들인 그리스 음식으로 점심을 먹는 모임이다. 작가가 최근 출간한 <유럽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라는 책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그리스 문화가 그리스도교에 미친 영향을 지도와 사진, 기록 등을 통해 재미있게 들려주셨다. 강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참석자들의 면면도 흥미롭다. 머리 희끗한 두 분의 의사 선생과 은행을 은퇴 후 금융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신다는 분이 계셨다. 평소의 생각이지만 퇴직 후 은퇴생활을 보내는 방법으로 공부만 한 것도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돈이 많이 안 든다. 사설 강습소도 있지만 주변 도서관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진행하는 질 높은 프로그램도 많다. 그리고 배움의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좋은 성향의 분들이 많아 관계의 갈등이 덜하다. 또한 지적 호기심을 계속 유지하니 치매예방에도 효과적이다. 이래저래 장점이 많아 보여 은퇴 선배들에게 공부를 권하면 동의는 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책과 공부, 강의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 공부이지 사실 배우며 노는 시간이다. 단테가 신곡에서 ‘연옥’이라는 개념을 내세운 배경이 세상 살아가는데 뭐 그리 중요할까마는 그래도 궁금하지 않은가? 한국의 기독교라는 어원은 서양의 그리스도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음차 한 말이 기리사독(基利斯督)이었고 그것이 조선에 건너오면서 기독교가 되었다는 설명에는 탄성을 자아낸다. 자발적 중년들의 배움 현장의 모습이 대강 이런 식이다.


나를 소개하라기에 앞으로 5개월 후면 직장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다고 하니 앞에 앉은 의사 선생이 관심을 보여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졌다.


*나 : 몇 년 남으셨어요?

*의사: 대학병원이라 65세가 정년인데 흉부외과 쪽엔 사람이 워낙 없어 더 근무해야 할 것 같아요.

*나: 좋은 거 아닌가요?

*의사: 다들 그리 얘기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아요.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평생을 일만 하다 노년을 맞는 것 같아서.


나보다 연배이신 그분이 지금이라도 의사생활을 접고 은퇴생활을 즐기면 된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평생을 해왔던 의사라는 직업의 장점들을 생각하면 고소득의 전문직종을 스스로 그만두기란 아까운 일일 것이다. 세상 일은 불공평한 것 같지만 공평한 면도 있다. 한쪽에선 조금이라도 더 일하고 싶어 안달인데 또 다른 쪽에선 이제 그만해도 되는데 일할 기회가 더 주어진다. 하지만 일을 더 하게 된 사람은 평생 일만 하다 노년이 되는 삶에 회의가 든다. 나에게 은퇴 후 계획을 묻기에 일단 아내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여행을 계획 중이라 하니 자신이 다녀온 유럽 여행의 팁을 일러 주셨다.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는 직업이라 짧게 짧게 여기저기 다녀오신 모양이다. 그분의 말을 들으며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선 먼저 포기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 던 ‘북촌책방’ 주인장의 조언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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