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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 이성보다 앞서는 감성

by 장용범

부부싸움 끝에 이혼에 이르는 부부들의 대화법이 있다고 한다.


*아내: 이번 아버님 생신을 어떻게 준비하지?

*남편: 알아서 해? 바깥일도 골치 아픈데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

*아내: 아니, 무슨 말이 그래. 내 부모도 아니잖아. 당신은 어떻게 매사 그런 식이야.

*남편: 집에서 하는 일이 뭐 있다고 그래. 그런 건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되잖아. 내가 돈을 안주는 것도 아니고.

*아내: 돈? 어휴, 몇 푼이나 번다고..

*남편: 뭐야??


이 대화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세 가지인데 바로 “비난, 방어, 경멸”이다. 이후 서로를 무시하고 말을 않는 “담쌓기”까지 이어지면 두 부부는 이혼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마음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만 그중 대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어떤 식이든 말로써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것은 이후 어지간한 조치로도 회복이 어려운 법이다.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우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영업관리직에 있다 보니 영업 잘하는 사람들의 세일즈 설득 방식에 중요한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감성과 이성을 적절히 섞어 고객을 설득하는데 감성의 비중이 월등히 높더라는 것이다.


*매니저: 지난번 계약이 될 것 같다던 고객과의 진행상항은 어떠세요?

*A사원: 그게 잘 안 되었어요.

*매니저: 아니, 고객이 A 씨의 제안에 대해 다 이해를 했고 계약서 싸인만 남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A사원: 그랬죠. 고객이 이해 못 한 걸 충분한 자료를 제시해 다 납득시켰죠. 그런데 정작 계약은 동일한 조건으로 딴 데서 하고 말았어요.

*매니저: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혹시 A 씨가 고객 심사를 거슬리게 한 건 아닌가요?


현장에서는 이런 경우가 참 많다. 영업사원의 지나친 논리적 설득에 고객이 “그래, 너 잘났다”는 거부감이 드는 경우이다. 한 마디로 ‘그래, 당신이 하는 말이 옳다. 하지만 너와는 계약하기 싫다’는 마음이다. 이런 사원들은 참 열심히 한다. 논리적 설득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료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하지만 정작 성과는 없다.


대화는 거의 두 가지 패턴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서로 대척점에 서는 대화이다. 한 사람이 제시한 대화의 주제에 상대가 그건 아니라고 반박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점점 언성이 올라가고 논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 어떤 화제를 던지면 꼭 비판하고 반대편에 서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대부분 그러하다. 어쩌면 이것도 너보다 잘 나고 싶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다른 하나는 서로 같은 방향으로 가는 대화이다. 둘 다 같은 생각이라 서로 죽이 잘 맞는다. 쿵짝쿵짝하는 건 좋은데 이 경우는 좋은 말보다는 제3의 누군가를 비난하는 부정적인 말을 할 때 더 신이 나는 것 같다. 우리는 좋은 일 보다 나쁜 일에 더 끌리는 속성이 있나 보다. 오늘 아침 신문을 펼쳐 보라. 긍정적 기사와 부정적 기사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그런데 기사를 만드는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세상의 어느 누가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게 무슨 기사거리가 되겠냐고 말이다. 일견 일리는 있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 부정적인 대화는 가만있어도 그리 흘러가지만 긍정적인 대화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특히 사고방식이 아예 부정적으로 디폴트 되어 있는 사람과는 대화가 무척 어려운데 아무리 분위기를 좋게 살려 놓아도 기어이 부정적으로 가고 만다. 이럴 땐 힘 빼지 말고 그냥 조용히 듣다가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나의 귀한 에너지를 변하지도 않을 남의 성향을 수정하는데 쏟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은 말과 글이 가능한 존재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내용 외에도 감정을 담을 수 있다. 그런데 상대방은 감정의 빗장부터 풀려야 비로소 내용이 수용된다. 우리는 원시적인 파충류의 뇌를 깊숙이 간직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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