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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 지속 가능 버킷리스트

by 장용범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의 리스트이다.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데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한 번쯤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버킷리스트를 작성한 적이 있었고 몇 개는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버킷리스트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라면 분명 좋은 것일 테고 그렇다면 더 많이 더 자주 할수록 좋을 텐데 이것을 한 번 했다고 리스트에서 지우는 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 번에 끝낼만한 일도 있다. ‘킬리만자로 산 오르기’ 같은 것을 자주 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파도 소리 들리는 바닷가 카페에서 글쓰기 같은 것은 자주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니 자주 할수록 만족감이 커지고 더 좋은 일이다. 이렇듯 버킷리스트는 반복할 것과 일회성으로 끝날 것을 구분 지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의 지속할 만한 버킷리스트를 다시 정리해 보았다.


[스티브 장스의 지속 가능 버킷리스트]


-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기

- 가족들과 행복하게 잘 지내기

- 재정적으로 안정된 삶 유지하기

- 벗들과 수시로 만나 교류하기

- 가끔 자전거로 한강 라이딩 하기

- 글쓰기를 이어가고 수시로 책으로 발표하기

- 체류형 여행으로 국내외 다른 곳에서 살아보기

- 여행할 수준으로 5개 국어 말하기

- 배우는 것을 계속하기

- 테마 정해 여행하기(예: 국내 문학관 탐방 등)

- 분기, 1년, 3년 단위의 새로운 도전거리 만들기

- 웹진 또는 인터넷 신문 운영해 보기


일회성 버킷리스트에 비해 지속 가능 버킷리스트는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 나이 들수록 일회성 버킷리스트보다는 지속 가능한 버킷리스트가 좋아 보인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내가 시한부 인생이라 하더라도 아주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것 같지는 않고 외국 여행지도 어디를 못 가서 환장할 정도는 아니니 나의 버킷리스트는 거의 달성 가능한 수준이다. 그리고 남들이 하고 싶어 하는 버킷리스트가 나에게는 별 의미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요즘은 외국여행을 가도 예전처럼 가슴 설렘이 덜한 걸 보면 20-30대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은 체력이 달려서라도 힘들 것 같다. 어디 조용한데 아내와 함께 가서 한두 달 정도 지내다 오는 게 나의 여행 수준이 될 터이다. 이번 키르기스스탄 여행에서도 확실히 느낀 것은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새로운 것을 보는 것보다는 어느 한 곳에 짐을 풀어놓고 머물면서 현지의 일상에 스며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식의 여행은 비용도 그리 안 든다.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일부러 찾아가서 올라가기보다는 멀리서 에펠탑을 보며 커피 한 잔 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나의 지속 가능한 버킷리스트를 나열해 보니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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