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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 디지털노마드로 살기

by 장용범

메밀꽃 부부라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이 직업인 사람들이다. 나이 서른을 한 해 앞두고 그간의 가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세계여행을 떠나 8년째 여행 중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여행 블로그에 댓글을 단 적이 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부러운 마음을 담아 돈은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답글이 달렸었다. 자신들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며 현지에서 일도 하고 블로그 글과 사진 등을 올려 해결한다고 했다.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여행 블로그 활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여행사와 항공사, 국내 매체로부터 관심을 받게 되고 사진 촬영이나 구매요청, 특급호텔 행사, 강연, 책 출간까지 이어지더라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단칸방을 정리해 떠난 세계여행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포기할 것부터 정하라”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되지만 그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포기했던 것도 채워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블로그라는 플랫폼과 카메라와 노트북으로 살아가는 일명 ‘디지털노마드’이다. 이번에 그들의 두 번째 책, ‘오늘도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갑니다’가 출간되었다기에 기꺼이 구입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대학도 중퇴하고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며 여행에 관한 꿈을 먹고 산 신혼부부는 그렇게 여행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대학원에서 콘텐츠 마케팅 강의를 들으며 알게 된 사실인데 대중에게 가장 소비가 많은 콘텐츠는 노래와 춤, 영화나 스포츠라고 한다. 여기에 여행 콘텐츠도 제법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현상에 관한 좀 억지적인 해석일 수 있으나 여기에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욕망이 반영되었다고 본다. 나는 가지지 못한 화려함을 보며 괴로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것과 다른 사람의 여행을 통해 잠시나마 ‘자유’라는 환상을 쫓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욕망한다. 그리고 그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괴로워한다. 메밀꽃 부부는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은 현실에서 자유에 대한 욕망을 채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인생이 확 바뀌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문제는 늘 새로 생기게 마련이니까. 자유로운 여행을 얻은 대신 메밀꽃 부부는 불안정한 직업의 현실과 수입을 고민할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메밀꽃 부부 이야기를 전하며 내년부터 우리도 저리 살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보았다. 그들이 30대에 하고 있는 일을 우리는 50대에 하자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보다는 여러모로 조건이 좋아 보인다. 메밀꽃 부부가 어떠한 생활기반도 마련 못하고 자유를 좇아 떠났던 여행이라면 그래도 우리는 아이들도 키워냈고, 집과 은퇴 후 소득도 어느 정도 장만했으니 장기간 여행에는 아주 좋은 조건인 셈이다. 나의 제안에 아내는 좋긴 한데 저렇게 계속 떠도는 여행보다는 그래도 국내에 왔다 갔다 하는 여행이 더 좋지 않겠냐고 했다. 아무리 여행이 좋아도 나이 들어 고생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일견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은퇴한 50대 부부에게 맞는 여행 스타일을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그들이 메밀꽃 부부라고 했으니 우리는 ‘호박꽃 부부’라고 할까 보다. 호박꽃에는 커다란 호박이 달려 있으니 인생의 실속을 다 챙기고 그들처럼 여행의 자유를 꿈꾸는 우리에게 이보다 좋은 별칭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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