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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 거절에 대하여

by 장용범

세상을 살다 보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요구를 받게 됩니다. 이때 그 요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법륜 스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 보니 요구를 할 때도 있지만 받기도 한다. ‘설득의 심리학’을 보니 인간의 기본 심리는 무언가를 하나 받았으면 나도 하나를 주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의 빚이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때는 내가 수용하기 어려움에도 상대와의 관계 때문에 차마 거절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참 고민되는 부분이다. 법륜 스님에게 질문하는 내용 중에도 그와 비슷한 사례가 간혹 보인다. 사업단장 시절을 돌아보면 처음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친한 지인들의 거절이었다. ‘내가 저한테 해준 게 얼만데 이걸 하나 못해줘.’라는 섭섭한 마음이 생기나 보다. 그러고는 이내 자존심 때문에 영업일을 그만두고 만다. 그럴 때 강조했던 영업교육이 ‘권유는 나의 마음, 거절은 그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요청하는 입장일 때이고 반대로 요청받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지인으로부터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는 무리가 따른다거나 아니면 그리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의 마음은 상대로부터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다는 것과 하기 싫다는 두 마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욕심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둘 다를 가지려는 데서 오는 갈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나의 문제이다. 그러니 ‘거절하는 법을 알려 주세요.’라는 사람들은 얼핏 마음이 여린 사람 같지만 사실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거절하는 법은 간단하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요청받은 것을 해주고 욕을 안 먹든지, 거절하고 욕을 먹든지이다. 일반적인 영업교육에는 거절에 대한 처리 화법도 함께 배운다. 세일즈는 고도의 심리싸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절을 예상하고 내가 원하는 게 ‘50’이라면 처음부터 ‘100’을 요구하기도 한다.


A: 모처럼 부탁을 했는데 지금 내 형편이 어려워서 좀 힘들어요.

B: 그렇죠. 요즘 코로나 시국에 모두들 힘들죠. 그럼 ‘100’ 이 어려우면 ‘70’ 정도는 어떨까요?


보통 이런 식의 접근이다. 요청을 받은 입장에선 100을 거절했는데 70으로 낮추었으니 새로운 갈등의 양상에 빠진 것이다. 세일즈 잘하는 사람에게는 상대의 형편이 어렵다는 말을 ‘당신의 형편을 들려달라. 그에 맞는 제안을 할 테니’로 받아들인다. 텔레마케터로부터 전화가 걸려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A: OOO 고객님이시죠. XX보험사인데 이번에 좋은 상품을 하나 소개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B: 지금 바빠서요.

A: 네, 바쁘시군요. 그런 언제 다시 연락드리면 되실까요?


이렇듯 상대의 거절 처리를 조건부로 해제하는 방법으로 세일즈 화법이 이어진다. 이런저런 세일즈 방법을 아는 입장에서 나의 거절 처리 방법은 비교적 심플한 편이다. “죄송하지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듯 그냥 내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하고 만다. 약간의 부작용도 있다. 지인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는데 저런 식으로 거절할 경우 자칫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기 싫은데도 찜찜하게 끌려가는 상황이 더 싫어 욕을 좀 듣더라도 거절은 명확하게 하려 한다.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문제입니다.’라는 법륜 스님의 말씀은 내 마음의 주인 자리를 내어주지 말라는 말씀으로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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