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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 법인 내 개인들의 착각

by 장용범

법률상 행위의 주체는 개인과 법인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개인의 실체는 쉽게 다가오지만 법인의 실체는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시내의 큰 빌딩들을 보면 그게 법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각종 뉴스에 등장하는 기업 오너나 CEO들을 보면 그들이 법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법인이 아니다. 법인은 그야말로 실체가 애매한 존재이다. 법률 행위의 주체로 법인이란 개념이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도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과연 실체가 없는 법인에게 법률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사실 법인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허상이고 상상의 산물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인용하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실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법인은 개인을 압도할 정도의 권리와 능력을 지니고 있다. 개인은 고속도로나 큰 공항을 지을 수 없지만 법인은 그 일을 해낸다. 범법행위의 경우에도 개인이 저지르는 것에 비해 법인의 행위는 그 피해가 훨씬 크고 광범위하다. 이제는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 규모를 살펴보자.


이 사건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들의 폐에서 섬유화 증세가 일어난 사건인데 신고된 사망자만 1,740명, 부상자 5,902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나온 화학 재해이다. 국가기구인 사회적 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연구 결과, 신고되지 않은 사례를 포함해 1994년부터 2011년 사이에 사망자 20,366명, 건강피해자 950,000명, 노출자 8,940,000명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었다_<나무 위키> 참조


이처럼 큰 피해를 입혔고 법의 판결도 법인의 잘못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 기업들은 지금도 버젓이 사업을 하고 있다. 아니 정 문제가 된다면 법인을 해체하고 이름을 달리하여 다른 법인으로 사업을 벌이면 된다. 이게 법인의 한 단면이다. 어떤 개인이 저 정도의 사건을 일으킬 수 있을까?


법인에 속한 개인을 보면 더 흥미롭다. 오늘날 취준생들이 그토록 입사를 갈망하는 대기업은 법인의 형태이다. 법인은 상상의 존재이기에 실제의 일을 할 수 없어 개인들을 근로계약의 형태로 활용하는데 재미난 건 이 법인에 소속된 개인들은 마치 자신이 법인이라도 된 양 행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도가 높을수록 더 높은 직위에 올라가 법인의 의사결정을 개인이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개인이 법인은 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히 착각이다. 프랑스의 절대군주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라고 했다지만 지금은 대기업의 오너라는 회장이라 해도 법인 지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오너의 상황이 이러한데 2-3년 임기제의 월급쟁이 사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재직 시 아무리 권한이 큰 CEO라 해도 그 자리를 물러나면 별 볼일 없는 개인이 되고 만다. 간혹 자신이 몸 담았던 법인으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일도 생긴다. 근무했던 법인으로부터 소송을 당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은 자신의 후배나 부하직원들이 법인의 이름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탓도 아닌 것이 그들은 법인으로부터 부여된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아무리 대기업에 근무한다 해도 법인인 회사와 개인은 분리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MZ세대들은 그런 면에서 확실해 보인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지부장이 신입인 나를 앉혀두고 했던 말이 있다. “당신이 회사가 필요한 거지 회사는 꼭 당신이 아니어도 된다. 그러니 아니다 싶으면 빨리 그만두는 게 본인을 위해서 좋을 것이다.” 당시에는 신입사원인 나에게 참 정나미 떨어지는 말을 한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실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을 통해 가능하면 실체가 있는 것을 우선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좀 더 인간적이고 바람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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