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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글을 발표하는 용기

by 장용범

글은 공개 여부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혼자 간직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과 공유할 것인가. 혼자 간직하는 글은 다소 정제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공유하기로 한 글은 초고 이후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게 된다. 소설 창작법 수업에서 글은 일단 쓰고 다음에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사실 글쓰기의 이 방법은 법륜 스님으로부터 먼저 들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기도 하신 스님은 한 줄 쓰고 고치지 말고 일단 한 번에 쭈욱 다 쓰고 다음에 고쳐가라고 하셨다.


공유하는 글쓰기는 내가 독자가 되어야 한다. 타인의 관점에서 이해가 되는지, 오타나 띄어쓰기에 문제는 없는지 등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베테랑 작가들의 명문장을 만나기라도 하면 이내 주눅이 든다. 여행작가인 메밀꽃 부부도 그랬었나 보다. 그렇게 소심해져 있을 때 자신들이 글을 발표할 이유를 찾았다며 소개해 준 내용이 다음과 같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학식이 높은 사람, 문장력이 탁월한 사람, 감각이 섬세한 사람, 지구력이 강한 사람 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운이 빠진다. 이미 훌륭한 글이 넘치므로 나는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내 삶과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나의 절실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기운이 난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_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 중에서


본격적인 글을 시작하지 1,000일 하고도 100일을 넘겼다. 처음에는 나의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멋쩍고 쑥스러움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런 나를 격려해 주신 여러 인연들 덕분에 평생의 작업거리 하나를 건진 셈이다. 하지만 말을 타면 종을 부리고 싶다는 속담처럼 글의 세계에 빠져들수록 이와 연관된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책을 출간해 볼까. 직장 생활의 에피소드를 소설로 엮거나 드라마 대본으로 작성해 보면 재미있을 거야. 아니면 요즘 대세에 따라 그간 작성한 글들을 팟캐스트나 유튜브에 낭독으로 올려도 좋을 것 같고 구글 번역기로 돌려 아마존에 영어 전자책으로 내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한글 전자책은 MZ세대를 겨냥해 40-50페이지 정도로 하는 게 좋을 거야’등의 이런저런 재미난 구상도 해본다.


혹자는 요즘 같은 책 안 읽는 세태에서 텍스트는 전망이 없다거나 쓰면 뭐하나 팔리질 않을 텐데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50대 중반을 넘어서니 결과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보다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에 비중을 두고 싶어서다. 그러니 쓰고 싶으면 쓰고, 하고 싶으면 하고, 떠나고 싶으면 떠나는 좀 가볍고 재미난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요즘은 콘텐츠 플랫폼이 잘 갖추어져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어렵지 세상에 유통시키는 것은 거의 공짜 수준이다. 내가 글쓰기 작업으로 재미난 시간을 보냈고 세상에 발표하는데 들어간 비용도 없으니 이건 아무리 봐도 남는 장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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