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위스키가 있는데 함께 드실 분 구해요.”
“야간에 한강 달리기 하실 분 오세요.”
“시청 근처에서 영어 스터디 함께 하실 분요?”
기성세대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각종 소모임 어플에는 이런 공고들이 자주 뜬다.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좀 외로울 때 대중을 상대로 공고를 띄우고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모집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이벤트를 끝내면 쿨하게 헤어지는 게 원칙인데 그 모임이 마음에 들면 반복해서 참여도 한다. 코엑스나 킨텍스는 컨벤션 사업의 대표적인 장소이다. 컨벤션(convention) 사업이 특정 주제를 걸고 일정한 공간으로 사람을 모으는 것임을 감안하면 이런 소모임도 일종의 변형된 컨벤션 사업이라 할 수 있겠다.
배우는 것은 학원을 이용하고 모임이라면 직장이나 동기회 등을 떠올리는 나에게 이런 모임이 처음엔 좀 낯설었다. 보통 여기서는 본명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제임스’, ‘토마스’ 등 어색한 부캐(부캐릭터) 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모든 것을 오픈하기보다는 한정된 모습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관계의 한계를 긋고 시작하는 모임이다.
예전에는 특이하다 정도로 치부했는데 요즘 들어 이들 모임을 달리 보게 되었다. 이런 경우를 떠올려 보자. A는 영업 기획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고 그의 기획서는 회사 내에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A의 그 능력은 회사 안에서나 빛을 발하지 밖에서는 마땅히 내세울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소모임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퇴근 무렵 그는 자신의 기획서 작성법을 주제로 작은 모임을 이끌 수도 있다. ‘시청 근처에서 영업 기획서 작성하는 법 배우실 분 구합니다. 시간은 퇴근 후 19시부터 21시까지’. 또 이런 경우는 어떨까? 자신은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싶은데 작심삼일이라 스스로가 영 미덥지 못할 때 ‘퇴근 후 광화문 근처 OO헬스장서 운동 함께 하실 분 구합니다. 제가 꾸준히 하는 성격이 못 되어 서로 격려하며 가고 싶군요’ 등등. 이런 소모임은 40,50대 에겐 낯선 문화지만 20, 30대 에겐 익숙한 문화처럼 보인다.
이는 오프라인 모임이 온라인을 통해 변형된 형태이다. 스마트 폰에 소모임 어플을 깔면 자신의 위치가 공개되고 그 공개된 지역 내 동일 취향을 가진 사람끼리 연결 짓는 방식이다. 위치 데이터, 자신의 취향 데이터를 결합해 만남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이제는 공중파에 나오는 탁월한 능력만이 주목받는 시대가 아니다. 스스로의 경력과 능력을 살펴보고 그중 소규모의 온라인 시장에 내세울 만한 것을 어필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것이다. “퇴근 후 학창 시절 풀었던 수학정석 공부하실 분 구합니다. 늦었지만 수학의 참맛을 알고 싶네요”, “제가 근무하는 OO기업에 대해 알고 싶은 분 모이세요”, “고대 만주어 공부하실 분 오세요” 등은 어떨까? 내가 가진 어떤 경험 또는 능력은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