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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by 장용범

퇴근길 S차장이 저녁을 드시겠냐고 했다. 저녁이 식사만을 의미하진 않기에 다이어트하는 상황에서 잠시 망설여졌다. 그런데 아는 지점장과 영업부서 직원이 나의 참석을 바라는 것 같아 그러자며 퇴근길 방향을 틀어 저녁 자리에 합류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역시나 영업에 대한 고충들을 듣게 되었다. 영업 현실에 대한 본사와 현장 간 괴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회사의 설계사 조직 위축과 어려워진 아웃바운드 영업상황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업무를 떠난 나로서는 별 할 말이 없었다. 한때 많은 애정을 지녔던 일이지만 이제는 다 지난 일로 여겨진다. 가끔 옛 동료들이 영업의 어려움을 이야기해도 의례적인 말만 덧붙이고 조용히 자리를 뜬다. 나 스스로도 이상하리만치 그 일에 대해 냉담해졌음을 느낀다. 이렇게 덤덤하게 바라볼 수도 있는 일을 왜 그리 매달렸을까도 싶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처럼 사람의 일도 그 시기에 할 일이 따로 있었나 보다.


직장인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회사의 일원이라면 기계의 톱니바퀴나 나사못처럼 제한된 역할을 맡게 된다. 일을 전체적으로 주관하지 못하고 각자는 일부의 역할에 머문다는 말이다. 주간에 있었던 전산개발 회의에서도 그랬다. 한 후선 부서에서 상품개발의 오류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 개발을 보고했다. 그 보고를 듣던 영업부서에서 그걸로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는 게 뭐냐고 되묻자 직접적인 것은 없지만 간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자 결국 관리부서 편하자는 개발이냐며 영업 쪽의 불만이 나왔다.


갑작스러운 저녁 자리에 지점장과 영업파트 직원의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었지만 정작 내 마음은 딴 곳에 머문다. “Not My Business!” 그렇다 이제 더 이상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현재 그 일은 누군가가 하고 있고, 결과는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렇게 열을 올려 이야기해도 당장 인사발령으로 다른 업무를 받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업무에 적응할 것이다. 그게 직장인이다.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을 통한 성취감이 아니라 매월 정해진 날짜에 들어오는 급여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말한다. 영업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다고, 이곳으로 오는 게 아니었다며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니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의 노래 한 소절처럼 조금 떨어져 보아야 한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이 노래는 나에게 이리 속삭이는 것 같다.

‘한때 많이 힘들었고 아팠겠지만 돌아보면 그 또한 지난 일이다. 함께 했던 많은 이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꿈도 꾸었지만 끝내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후회는 말아라. 그 시절 너는 진심이었고 그로 인해 맘껏 행복하지 않았더냐. 지난 일들은 지나간 대로 너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고 갔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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