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17. 국적을 생각하다

by 장용범

#미발표

나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내 국적이 대한민국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민 등을 제외하면 보통 국적은 부모의 혈통이나 태어난 출생지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나라 국적법은 자녀 출생 당시에 부(父)가 대한민국의 국민일 때, 출생 전에 부가 사망한 때에는 사망 당시에 대한민국의 국민일 때, 부가 분명하지 않은 때 또는 국적이 없을 때에는 모(母)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국적을 취득한다. 다만, 부모가 분명하지 않을 때는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국적을 취득할 수도 있다..


중국 연변의 룽징(龍井) 명동촌에는 윤동주의 생가가 있다. 그 앞 비석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적혀 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윤동주 시인을 조선족이라거나 중국인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좀 당혹스러운 표현이다. 그런데 윤동주의 일대기를 보면 그를 한국 국적의 시인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 든다. 일단 그는 태어나고 자란 곳이 중국 땅 북간도(만주) 명동촌이다. 출생지로 보면 그는 중국인이지만 그래도 부모의 혈통을 보면 함경도 회령 사람들이니 일단 조선 국적이라고 해두자. 그는 평양에서는 중학교를, 경성(서울)에서는 대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일본의 교토와 도쿄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중 1943년 일본 관헌에 잡혀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윤동주가 서울에 잠시 머물렀던 기간은 그의 생애 중 연세대 재학 당시이다. 그렇다면 윤동주의 국적은 중국인가, 북한인가 아니면 한국인가? 우리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국제법상 북한도 우리와 UN에 동시 가입한 엄연한 국가이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에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 유해를 카즈흐스탄에서 봉환하여 대전 국립묘지에 모신 일이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상당한 반발을 했었다. 그 이유는 홍범도 장군의 고향은 평안북도 양덕 출신이고, 그분이 활약했던 봉오동은 함경도 인근 지역으로 장군의 태생이나 활약상으로 보면 북한으로 모시는 게 당연한데 뜬금없이 한국이 장군의 유해를 봉환해 살아생전 가 본 적도 없는 대전 땅에 모셨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어쩌면 장군에게도 영면의 자리가 그리 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외교적 승리라고 봐야겠지만 좀 이상한 유해 봉환이었다.


재일동포의 국적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태평양 전쟁 전의 재일 조선인은 일본인과 동일한 ‘대일본제국 황국신민’이었다. 그런데 전쟁에서 패하자 일본 정부는 재일 조선인을 외국인 신분으로 전환하였다. 만일 내가 조선인 부모를 두었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일본 국적이었다고 생각해 보자. 학교에는 일본인 친구들도 있는데 하루아침에 외국인이 된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속한 나라가 있어야 하는데 하필 조국은 남북한으로 갈라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들 중에는 분단을 인정 못해 어느 나라도 선택 않고 죽을 때까지 지구상에 없는 조선 국적으로 남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김일성은 북한 국적을 선택한 자국의 국민들을 위해 적극적인 교육도 시키고 투자도 했던 반면 남한에게 재일 조선인은 한동안 잊혀진 국민이었다. 과연 그들은 대한민국이 자신의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국적은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희생하는 당위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국적 자체가 모호한 경우라면 어떨까? 이는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자신의 영지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다. 정부나 국가라는 체제 안에서 권력을 쥔 대상이 황제이거나 공화정의 대표이거나 그들은 민중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호의호식을 추구하니 차라리 무정부주의를 지향했던 것 같다. 내셔널리즘(민족주의), 국가주의 등 어떤 형태로든 이런 정체성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두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파괴가 자행되는지 생각해 보면 국가라는 상상의 관념이 인간이라는 실체를 억압하는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