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할 때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 두 분의 퇴직자를 보내드렸다. 하필 늦은 오후엔 비가 조금씩 내려 떠나는 이의 마음이 좀 무거웠을 것 같다. 어떻게 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울까. 시인은 떠나야 할 때 떠나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떠나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별의 모습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아름다운 이별이 있는가 하면 힘겨운 이별도 있고 어떤 이별은 차라리 만남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이별도 있다. 우리는 만남의 설렘이 끝까지 이어지기를 원하지만 인간사가 어디 그런가. 설렘은 잠시뿐이고 이어지는 모습들은 희비가 교차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다.
솔로몬 왕이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측근 베나이아를 혼내줄 목적으로 이런 명령을 내렸다. “너는 나에게 마술 반지를 하나 구해 바쳐라. 그 반지는 행복한 사람을 슬프게 하고, 슬픔에 빠진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고 들었다. 내가 장막절(추수감사절) 잔치가 있는 6개월의 말미를 줄 테니 그때까지 꼭 구해와라.” 베나이아는 마술 반지를 구하려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구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약속한 날 이른 아침, 그는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시장엘 갔다. 마침 카펫에 반지를 진열하고 있는 한 소년과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값은 상관없어요. 솔로몬 왕이 슬픈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행복한 사람을 슬프게도 하는 반지를 찾고 있는데. 그런 반지를 본 적 있습니까?”라고 묻자 이 가난한 할아버지가 카펫 안에서 아주 평범한 금반지 하나를 꺼내 들고는 글자를 하나 새겨 주었다. 그는 잔칫날 그 반지를 솔로몬 왕에게 바쳤는데 왕은 얼굴이 굳어지더니 이내 베나이아를 크게 인정해 주었다. 그 반지에는 히브리어로 Gamzeya Avor (감제야 아보르)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뜻이다.
32년 근무한 상사의 짐이 쇼핑백 3개에 들어갔다. 댁이 파주인데 차를 안 가지고 오셔서 회사 근처인 서울역까지 걸어가시겠다고 하신다. 직원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웅을 했고 나는 상사의 쇼핑백을 들고는 1층 정문까지 내려갔다. 이제 그만 들어가 보라기에 그의 쇼핑백을 건네는데 검은 명패가 너무 길어 쇼핑백 밖으로 삐죽이 삐져나왔다. 꽃다발과 직원들의 선물, 명패가 담긴 쇼핑백 세 개를 들고 그는 서울역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하필 약간의 비가 희미하게 내리는데 그 뒷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못내 아려왔다.
저기
처진 어깨의 한 사내가 걸어간다.
쇼핑백에 삐죽이 나온 검은색 명패
그리고 화사한 꽃다발과 선물들
흰머리 듬성듬성
흐린 하늘을 머리에 이고서
세월의 회색 카펫을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한 채
천천히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