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어슬렁거림을 다시 봄

by 장용범

어슬렁 거린다는 말이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다람쥐나 토끼가 어슬렁 거린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지만 호랑이나 사자가 어슬렁 거린다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된다. 어슬렁 거린다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고 어쩐지 그 여유 속에 내재된 에너지가 만만치 않음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어슬렁 거리는 것이 게으르다는 것은 아니다. 어슬렁거림은 에너지를 축적하는 과정이면서 주변을 살피며 전체를 보는 적극적 행위이기도 하다. 이즈미야 간지라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는 “머리”가 상징하는 효율성 추구 경향이 현대인을 놀이에서 멀어지게 했다면서 ‘즉흥성’과 ‘번거로움’을 통해 어슬렁거림으로 놀이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바로 내려가는 것이 ‘머리’가 추구하는 효율성이고 합목적적인 방식이라면, 서울에서 출발하여 내려가다 이정표를 보고는 여주로 빠져나와 세종대왕릉을 보기도 하고 좀 더 내려가다 수안보에 들러 온천욕을 즐기는데 너무 늦었으면 그냥 하룻밤 머물기도 하는 등 그렇게 부산으로 어슬렁어슬렁 내려가는 방식이 즉흥성과 번거로움이 가미된 놀이라 할 것이다.

50대 중반에 접어들며 좋은 점을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이제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거나 어느 수준까지 꼭 올리고야 만다는 목표지향적인 사고에서 좀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20-30대와는 달리 습득의 속도가 좀 느려졌고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것도 있지만 시간을 들이는 그 과정을 즐기려는 마음이 있는 까닭이다. 하나를 붙잡고 시간을 들이는 그 자체에 대한 몰입이 놀이가 되고 있다. 이는 어슬렁거리는 시간이며 번거로움의 시간들이다. 그런데 이것도 훈련이 좀 필요한 것 같다. 마음이 여유롭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이 남아돌아도 어슬렁거리며 놀기가 쉽지 않다.

중년의 시기는 마음이 조급해선 안 된다. 이제 자신의 힘으로 닿을 수 있는 여러 한계를 보게 되는 시기이고 삶의 하프타임을 넘어서는 지점이다. 가끔 큰 병으로 쓰러지는 친구들도 나오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기도 하는 등 죽음에 대해서도 다소 담담하게 바라보게 된 나이이다. 아이들의 학업과 취업, 결혼 등 아직 과제가 없진 않지만 그에 대한 나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임을 알기에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에는 마음을 좀 내려놓기도 한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시기이다. 회사에서의 역할도 빠르게 움직이는 역동성보다는 전체를 바라보며 방향을 제시하는 통찰력이 더 필요한 시기이다. 그래서 좀 어슬렁거려야 한다. 토끼나 다람쥐 같이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보폭보다는 사자나 호랑이 같이 좀 느리게 움직이더라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살펴야 하는 시기이다.

어슬렁거림은 게으름이 아니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안갯속에 싸인 듯한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 어슬렁거림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놀이가 되지만 나중에 힘을 쏟아야 할 방향을 잡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사자나 호랑이의 어슬렁거림은 어쩐지 주위를 긴장되게 하는 법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