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독서(讀書) 유감

by 장용범

요즘 책을 읽는데 전에는 못 느꼈던 어려움에 처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거나 눈이 침침해져 글이 잘 안 보인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책을 읽으며 차분히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기보다는 나의 생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서 집중하기가 영 어려워진 것이다. 괜찮은 방식이라고 하겠지만 부작용이 없지 않다. 몇 문단 읽어가다 뻔한 내용이다 싶으면 자꾸 건너뛰게 된다. 그러면 좀 난이도 있는 책으로 가면 되는데 그건 또 내용에 현실감이 없다는 핑계로 기피하고 있다. 이래저래 독서의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이유를 가만 생각해보니 뚜렷한 주제의식이 없어진 것 같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기웃대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흥미로운 분야가 생기게 마련인데 한 우물을 깊이 파는 성격은 못되는터라 늘 정해진 얕은 물가에서만 찰랑거리며 놀고 있는 것 같다. 내 입맛에 맞는 책을 한 권 골라 익숙한 내용이면 건너뛰는 행태가 반복되다 보니 진척이 느껴지지 않고 그냥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이럴 땐 어찌해야 할까. 역시 그 해결책을 책에서 찾으려고 뒤적이게 되니 이 마저도 어쩔 수 없는 병폐이다.

김영민 교수는 독서의 목적이 내 정신의 날 선 도끼를 하나 찾기 위함이란다. 그것을 가지면 뭐가 좋은데. 그러고 보니 박웅현도 책을 도끼라고 한 걸 보면 독서는 내가 가진 기존 생각들을 쪼개는 역할을 해야 진정한 독서라 할까 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날도 서지 않은 무딘 도끼질로 헛심만 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독할 책을 찾아내기 위해서 다독을 한다.’ 참 모순 같은 이 말을 버젓이 하는 그가 얄밉기도 하다. 날 선 도끼는 아주 드물게 있으니 여러 도끼들을 재빨리 훑어가면서 날 선 도끼를 하나 찾으라는 말인데 이 현상은 아직 날 선 도끼를 못 찾는데서 오는 허탈감 같은 것일까.

그렇다면 또 의문이 생긴다. 대체 정독할 책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이다. 누군가에겐 정독할 대상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냥 종이뭉치에 불과할 책들이 분명 있다. 각자가 책 읽는 수준이 다르니 이는 당연한 말씀이다. 우수도서로 선정된 책이라고 모두에게 그만한 감흥을 주는 책은 아닐 터이니 각자의 우수도서는 스스로가 정할 노릇이다. 다시 김영민은 말한다. ‘정독할 부분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기만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다.’ 약간의 힌트를 얻게 되었다. 최근 나의 독서가 헛돌고 있는 것은 나에게 질문이 없기 때문이다. 왜 질문이 없는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이 사그라들고 있어서이다. 뭔가 궁금한 게 있어야 찾아보기라도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릴 텐데 이건 분명 내가 꼰대가 되고 있다는 징조이다. 아내는 노인들이 너무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도 볼썽사납더라는 말을 하지만 아직 나는 노인은 아니잖은가. 아무튼 세상에 대한 질문이 없는 것이 겉도는 내 독서의 원인임을 알게 된 것이 그나마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뜬금없지만 최근 궁금한 게 있긴 하다. 어제 뉴스에 보니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처분이 법원의 판단에 의해 무리수였다는 결론이 났나 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호랑이 같은 인물을 검찰총장 자리에 앉혀 스스로들 힘들어하는지 참 이상하다. 한편으론 이럴 수도 있는 나라인걸 보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상당 부분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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