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

by 장용범

“세상의 모든 것은 관점을 달리하면 완전히 다른 일로 바뀐다.” 아나운서, 작가, CEO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손미나의 인터뷰 도중 나온 말이다. 다른 것은 별 특이할 게 없었는데 이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똥이 밭에 있으면 거름이요 방에 있으면 오물인 것처럼 세상에는 고정불변의 성질을 가진 것은 없다는 법륜 스님의 법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은 중동에 있지 않고 남미에 있는 베네수엘라이다. 최근 하이퍼 플레이션으로 나라 경제가 거덜 나고 국민들의 고통이 아주 심각한 나라인데 2018년 한 해동안 물가상승률이 1,300,000%을 기록했으니 더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화폐단위가 볼리바르인데 닭 한 마리에 1,460만 볼리바르, 화장지 한 롤에 260만 볼리바르로 돈의 부피가 거의 리어카로 끌고 가야 닭 한 마리와 휴지 한 롤을 사는 실정이다. 이런 나라가 현 지구 상에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전 세계에 코로나가 덮친 지금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고통은 거의 절망 수준일 것 같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으로 도저히 가난할 수 없는 조건을 갖춘 나라인데 우리의 관점에선 참 이상해 보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은 잘 살래야 잘 살 수 없는 조건을 가진 나라이다. 군사, 경제, 인구 등 세계 최강의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한반도를 두고 대립하고 있고 한국 전쟁 이후 아직 종전선언이 없어 언제 북한의 미사일이나 장사정포가 날아들지 모를 상황이다. 전 국토의 70%가 산으로 되어 있어 농사 지을 땅이나 변변한 지하자원도 없는 이 나라가 어떻게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 대국, 세계 6위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국토면적이 170배가 되는 러시아와 GDP가 비슷한 수준이니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경쟁에 찌든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을까.

불가에선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이 말의 의미는 드러난 상황이나 여건은 내가 어떤 관점으로 수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 ’ 똥은 똥이다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만물에는 자성(自性)이 없다’, ‘첫 번째 화살은 맞을지언정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라’ 등은 모두 같은 의미를 달리 표현한 말들이다. 이 가르침을 나에게 적용해 보자. 오늘도 나에게는 이런저런 일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때 내가 취해야 할 자세는 벌어진 일과 나를 분리해서 보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고 그것을 내가 어떠한 관점으로 수용할 것인지는 오직 내 마음에 달려있다. 어쩌면 이것이 베네수엘라와 대한민국이 상황을 달리 한 근본 이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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