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2. Memento Mori(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by 장용범

고모님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뵈러 가는 날이었다. 아버님은 임종을 앞둔 당신의 누나를 만나러 부산에서 수원까지 올라오셨다. 오랜 기간 떨어져 있던 두 분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것도 단 10분 동안만. 요즘 요양병원의 규칙이 그러하단다. 하지만 그 만남을 위해 새벽부터 부산서 올라온 동생에게는 참으로 가혹해 보였다.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임종을 앞둔 노인들의 현실이다. 고모님을 만나러 가는 절차가 무척 번거롭다. 체온을 재고, 설문지에 신상을 작성하고, 자가 키트 코로나 검사까지 마치고는 결과를 직원에게 보여줘야 10분간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고모님은 마스크를 낀 동생을 처음엔 못 알아보셨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버지의 마스크를 벗겨 드리자 깜짝 놀라는 모습에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누나, 여기 왜 있능교?” 그랬다. 고모님은 평생을 부산서 사시다가 늘그막에 고모부님이 돌아가시고는 당신의 몸을 의탁할 곳을 찾아 딸이 있는 수원까지 오시게 된 거다. 80대 남매의 상봉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면회시간 다 되었습니다."라는 병원 측 말에 저 노인이 누나를 뵈러 부산서 올라오셨는데 조금 더 시간을 주면 안 되겠냐고 하니 다른 노인들의 면회도 준비되어 있어 곤란하다는 답변이었다. 누가 봐도 고모님의 몸 상태는 이번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나의 작은 고모님은 상당한 멋장이셨다. 수년 전 뵈었을 때만 해도 노인이 굽 있는 구두와 빨간색 옷을 즐겨 입으셔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었다. 모시던 사촌 누이의 말을 빌면 88세의 연세에도 정신이 맑으셔서 요양병원에 들어가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당신의 몸에는 이미 암세포가 상당 부분 전이되어 있었다.

부산 가시는 부모님을 역에서 배웅해 드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답답하다. 라틴어에는 ’메멘토 모리‘라는 단어가 있다. 번역하자면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로마 시대 정벌을 나갔던 개선장군이 돌아오면 군중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하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네가 비록 지금은 화려한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겸손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화려한 시절은 있다. 그리고 그 시절은 시간과 함께 으스러져 간다. 고모님을 뵙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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