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문제는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
좀 오래된 일이다. 코엑스의 한 행사에 참여했다가 CPR(심폐소생술)을 배운 적이 있다. 당시 배웠던 것 중 지금도 기억나는 인상적이었던 내용이 있다.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보자. 지하철 대합실에서 누군가 쓰러졌고 그에게는 급히 CPR을 조치해야 할 상황이다. 어떤 장면이 그려지는가? 대부분은 웅성웅성 쓰러진 사람 주위에 모여 구경만 할 것이다. 이때 누군가 CPR 조치를 하려는 이가 나타났고 그 사람이 할 조치로 매뉴얼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주위 구경꾼 중 임무를 부여할 사람을 명확하게 지정해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말이다. 이를테면 “저기 파란색 셔츠 입은 아저씨, CPR키트 가져다주세요. 그리고 빨간 가방 든 학생, 지금 바로 119에 신고해 주세요 “라는 식이다. 그리고 자신은 119 대원이 올 때까지 계속 CPR을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왜 이런 내용이 매뉴얼화되었을까? 주변의 구경꾼은 아무리 많아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누군가에게 역할을 부여하여 구경꾼에서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이 모이는 조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작년 외부감사 이후 대응처리 관련 일을 우리 부서가 맡게 되었다. 그런데 대체 이게 누구의 일인가? 특정 부서의 일이라 할 수는 없고 회사 전체가 엮인 일이다. 누가 답답한가? 이게 애매하다. 특별히 답답할 부서가 안 보인다. 회사 전체적으로는 처리해야 할 일이 분명한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누구의 일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다. 그나마 표면적인 업무 분담에서 우리 부서가 관여되어 떠맡게 된 것이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종류의 일은 진행하기가 무척 어려움을 알고 있다. 인력부터 시작해서 모든 협조는 연관된 전 부서로부터 받아야 하는데 이런 일은 부서 간 협조도 잘 안된다. 역시나 인력을 보내달라는 요청에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급기야 내부에선 불만이 터져 나온다. 대체 누구의 일이냐는 것이다.
모두의 일은 누구의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상황을 주도하게 되고 사람들은 그를 리더라고 부른다. 결국 이 문제는 부사장이 주관하는 임시 TF를 꾸려 진행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공기업이나 공무원 조직의 효율성은 오너가 있는 대기업만 못하다. 그것은 공기업의 임기제 사장과 대기업의 종신제 오너는 사장이라도 같은 사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구성원들의 마음가짐부터 차이가 난다.
세상에는 작은 나에 머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드물게도 회사나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는 몽상가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개인들이 공동체의 위기는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하다면 시간의 문제이지 이는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기후위기나 환경오염, 한반도의 통일문제 등 우리 주변에는 이런 문제들이 참 많다. 이번 건으로 모두의 문제는 누구의 문제도 아니란 걸 다시 한번 인정해야 했던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