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현 가능성과 상관없이 추진하자
크라스키노 포럼 이사회가 있었다. 단체의 성격이 다소 거창하고 추상적인데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 특히 러시아와의 민간 교류를 확대하여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주로 러시아 유학파인 교수나 시민단체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고 회원들이 자기 주머니 털어 강연이나 세미나 같은 한 해의 사업을 선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국내의 러시아를 대하는 싸늘한 분위기만큼이나 사업들도 위축되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앞으로 무엇을 할지 방향성 잡기가 애매한 상황인데 여기에 이사장님의 말씀이 인상적이다.
‘실현 가능성과 상관없이 목적에 맞는 사업을 발굴하여 추진하자 ‘ 고 하셨다. 일을 하는 데 있어 실현 가능성과 수익성을 따지는 것을 기본으로 알고 있는 나에게는 정말 생소한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 자리에 모인 대다수의 분들이 학창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여 평생을 그리 살아온 분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에 비해 정말 다른 삶의 궤적을 가졌는데 대학시절에는 ROTC 여서 학생운동에 참여할 일이 없었고, 졸업과 전역 후에는 안정된 직장에 바로 취업해 잘 먹고 잘 살다가 그들이 앞장선 민주화 활동 덕에 민주화된 나라에서 살게 되었다.
내가 이 분들과 함께 하게 된 것은 우연히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온 후로 대륙에 대한 끌림이 있어 연이 되었지만 가끔 어떤 일을 진행할 때면 가치관 차이를 확연히 느낄 때가 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 당장 수익성도 없어 보이는 일을 넉넉지도 않은 자기 주머니 털어 추진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이 분들을 가까이서 보면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면을 보인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한국과 러시아의 하늘 길이 끊어진 지금, 러시아로 바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동해와 블라디보스톡간의 여객선 운항이 전부다. 하지만 이마저도 물류나 사람의 이동이 급감하여 운행 중단의 상황에 처했나 보다. 이 노선을 살릴 방안을 다른 NGO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와의 연대 가능성을 논의하자. (의도는 알겠는데 그게 될까? 내 생각 ^^;)
루소 포비아라고 유럽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는데 관련 강좌를 진행하기로 하자. 그런데 참가비 1만 원씩 받는 걸로는 대관료 등이 턱없이 부족하니 모임의 경비로 충당하자 등등. (지금도 재정이 어려운데 - -;)
금융업에 오래 있어서인지 수익성 없는 일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비영리 단체에서 재무 관련 일을 하며 느끼는 것은 이래서야 단체가 언제까지 유지되려나 싶은 답답함이 있다. 그래도 회원들은 연회비를 꼬박꼬박 내는데 참 신기하다. 마치 어떤 종교에 대한 기부금과 같은 성격이 아닐까 싶다.
실현 가능성이 없더라도 우리의 목적에 맞는 사업이라면 발굴하여 추진한다는 분들과 지내다 보니 나도 다소 이상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것 같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독립운동하는 사람, 끌려가 고문당하고 취업도 안 될 걸 알지만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광화문 네 거리에서 피켓 들고 서 있는 사람. 대체 이런 짓을 왜 할까? 하지만 이런 건 있는 것 같다. 꿈꾸지 않는 사람은 누군가의 꿈을 위해 살게 된다는 것이다. 50, 60대가 되도록 여전히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정작 나의 꿈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