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원서를 처음 넣은 딸아이에게
올해 대학 4학년인 딸아이가 취업을 위한 첫 원서를 넣었다. 보험 계리 업무를 할 수 있는 보험사에 가고 싶어 했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며 취업이라는 현실 앞에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원서 넣는 것까지도 자신 없어 하기에 이건 아니다 싶어 사회생활을 먼저 한 아빠의 시각으로 몇 가지 조언을 건넸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취업 관련 이야기에 위축되겠지. 경기가 안 좋다. 청년 실업률이 높다. 서울대 출신들도 취업이 안 되더라 등등.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이 험한 파도를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스스로의 자존감이 형편없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특히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 딸에게는 세상에 나서기가 두려울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미 그런 상황들을 많이 겪어왔다. 스무 살 청년에게도 크고 작은 그런 경험들은 있다. 처음 어린이집에 갈 때 엄마에게서 안 떨어지려고 얼마나 빽빽 울어댔던가. 초등, 중, 고등학교에 갈 때도 바뀌는 환경마다 적응하는 건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그럭저럭 다 지나왔다. 두려움의 대상은 바라보고만 있으면 점점 덩치가 커져 나를 숨도 못 쉬게 압도하지만 용기 내어 직접 부딪히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쑥 줄어들곤 한다. 그러니 여기저기 원서도 넣고 취업시장에 적극 뛰어드는 게 맞다. 정 안되면 N 잡러로 살 수도 있다. 문제는 현실을 회피하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채용 분위기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블라인드 채용이라 하여 학교, 학점, 사진, 토익 등 모든 기초 자료가 가려진 상태에서 자기소개서와 지원 동기 등을 중심으로 서류 전형이 이루어진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원 안 할 이유가 없다. 외부 감사를 받는 공기업은 채용의 공정성 정도가 더욱 엄격하다. 감사의 중점 사항에 채용 절차는 반드시 포함되기에 직업의 안정성을 우선하는 공기업 직원들이 자기 죽을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정한 지침대로 비교적 공정한 채용이 진행된다고 봐야 한다.
딸아이는 준비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런데 준비는 언제나 부족하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달려들 대상이 너무 커 보이기 때문이다. 만일 나를 계속 괴롭히는 급우가 있다면 내가 취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계속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든지 아니면 짱돌이라도 들고 달려들어 한 대 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직사게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한 건 설령 그렇게 맞는다 해도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감도 생기고 당당해진다. 올림픽 국가대표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되면 누구나 하는 사회 진출이다. 중요한 건 내가 지니지 못한 남이 가진 스펙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나의 강점을 더 강화시키는 것이다. 사회생활은 완벽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지닌 몇 안 되는 강점으로 약점을 커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란 뜻이다. 그렇다 보네 이러쿵저러쿵 사람이나 세태에 대해 말이 많은 게 인간사다. 이럴 때 난 장기하의 ‘그건 니 생각이고’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저러쿵/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해도 /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미주알고주알 친절히 설명을/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해도 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 그건 니 생각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각자가 다른다. 보편적인 상식이란 게 있다지만 그것도 예외는 있다. 그러니 너무 세상 기준에 휩쓸려 맞추어 살려고 말자.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 자신이고 내가 가는 길은 내가 정한다. 그게 살아가면서 쥐어 터지고 아파해도 스스로 웃을 수 있는 길이다. 어차피 인생의 종착역은 동일하고 내 인생의 정답은 내가 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