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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Oct 30. 2022

640. 은퇴 여행을 준비해 준 사람들

고마운 아우님들

두 달전이었나 보다. 직장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형 동생처럼 지내는 아우들이 나의 은퇴를 맞아 펜션을 빌려 놀자고 했다. 마음은 고마우나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며 거절하자 다들 실망했는지 서운하다고들 했다. 아무리 그래도 싫은 걸 굳이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번에는 여행을 같이 가자고 했다. 숙소 예약까지 다 마쳤고 일정들을 맞추었다기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함께 금요일 오후 휴가를 내고 일찌감치 서울을 벗어났다. 중부내륙에 들어서니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가을 산의 정취가 아름다웠다. 충주의 탄금대를 거쳐 포항 구룡포  펜션에 도착해 1박을 했다. 지역 소주에 곁들인 횟감이 싱싱하고 좋았다. 이튿날 구룡포를 출발해 울산을 거쳐 점심때쯤 부산에 도착했다. 오후 내내 아우들과 함께 지내다 헤어졌는데 이번에는 부산서 근무하는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거제도 가족 여행을 서둘러 마치고 왔다기에 대체 왜들 이러나 싶다. 과분한 아우들의 마음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사람 대하는 마음

돌이켜보면 크게 크게 모나지 않은 직장 내 인간관계를 가졌던 것 같다. 여기에는 사람을 대할 때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이라는 원칙을 지키려 했던 것도 있다. ‘도에 이르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좋고 싫은 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면 된다’는 뜻이다. 나에게도 호불호가 없을 수는 없지만 사람을 대할 때 가능한 호불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상대의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나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인데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면 가장 먼저 내가 괴롭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미워하는 마음으로 굳이 스스로를 괴롭힐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다. 물론 정말 안 맞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땐 그냥 많이 다르네 하고 시절 인연 후엔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연락 없이 지낸다. 사람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것으로도 내 마음은 많이 가볍고 편안해지는 경험을 한다. 일종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나의 마음 챙김 기술인 셈이다. 세상 사람이 다 내게 맞을 수도 없고 맞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인간관계로 인해 가능하면 나를 괴롭히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는 말은 특히 인간관계에 유용한 말이다. 기대는 일종의 욕심이다. 로또 복권을 구입했을 때 사람들은 1등에 당첨되지 않아도 크게 낙담하거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이는 당첨될 거라는 큰 기대를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관계된 사람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기대를 한다. 스스로 마음의 주판을 튕기는 것이다. 그러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실망하고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그 사람이 미워진다. 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마냥 호인이라는 건 아니다. 나도 내 감정과 정서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힘들고 괴로운데 어떻게 주변인들에게 좋게 대할 것인가 싶다. 그래서 언제나 나 자신의 감정과 선택을 우선에 두려 한다. 직장의 인연이지만 개인들의  귀한 휴가까지 내서 나에게 은퇴여행을 마련해 준 사람들, 난 그들에게 뭘 그리해주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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