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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Nov 13. 2022

649. 하고싶은 것을 하지 않을 자유

’백 년보다 긴 하루‘를 읽고

A:  너희는 헤어진다.

B: 언제?

A: 그건 모르지만 반드시 헤어진다.


가을이라 그런지 이별을 떠올린다. 가로수의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며 지난 봄날 보았던 화사했던 꽃들과 연초록의 새순들이 생각났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진기츠 아이뜨마또프의 ‘백 년보다 긴 하루’라는 책을 두고 오프라인 독서모임이 있었다. 내용 중에 두 가정이 너무도 잘 지내다 한 가정의 가장이 사상범으로 몰려 어디론가 끌려가 죽고 만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후 자신의 가정에 더하여 어려워진 친구의 가정을 돕다가 그 아내(자리빠)에게 사랑의 감정이 생긴 예지게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혼자서 두 아이를 힘겹게 키우는 자리빠도 예지게이에게 의지하는 마음은 크지만 그것이 몰고 올 파국을 잘 알기에 조용히 아이들과 함께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그들의 사랑은 끝이 난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인공 예지게이가 키우는 아주 건장한 수컷 낙타(까르나르)가 있다. 이놈은 발정기가 되면 집을 뛰쳐나가 여러 암컷들을 거느리고는 초원에서 살다가 주인에게 다시 잡혀온다. 작가가 무슨 의도로 이 두 상황을 대조시켰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소재로 삼아 작품을 냈다가 당대에 폭망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다. DH 로렌스는 그 작품 발표로 뭇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쓸쓸하게 죽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마광수라는 작가가 있었다. <즐거운 사라>를 출간하고는 음란물 제작으로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그 후 연금도 제대로 못 받고 쓸쓸히 죽은 작가이다. 다른 동물들은 종족 번식을 위한 원초적 본능에 충실할 수 있어도 적어도 인간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나 도덕과 달리 인간이 영장류로서 지니는 본능은 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다만 스스로 절제한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사회적으로 더 큰 것을 잃고 싶지 않아서이다. 어쩌면 생물학의 관점에서 영장류인 인간 사회는 거세화된 수컷들이 사는 세상일 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도 있지만, 하고 싶지만 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는 법륜 스님의 말씀이 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자유냐 싶었다. 지금껏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에만 익숙했던 탓이다. 그런데 요즘은 지구상의 70억 인간들이 어울려 살면서 공동체를 이만큼이라도 유지하는 할 수 있었던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자발적으로 선택을 했거나 아니면 제도나 관습, 법 때문인지 불문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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