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 결국 스스로 해야 한다

by 장용범

독실하게 신을 믿는 이가 있었다. 그의 기도는 너무도 간절했다. ‘신이시여, 저에게 직업을 갖게 해 주시고 예쁘고 착한 아내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저를 부자가 되게 해 주시고 건강을 허락하시옵소서’ 등등 그는 매일매일 이런저런 일들로 신에게 기도를 했다. 어느 날 그에게 신이 나타났다. 그는 마침내 기도가 성취되었다는 생각에 환한 얼굴을 지었는데 신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알았다. 그런데 대체 너는 뭘 할 건데.’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는 ‘신은 인격체가 아니라 에너지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신을 인격체로 받아들이면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신을 인격체로 대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래야 모든 책임을 신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직업을 구하면 신에게 감사할 것이고 일자리를 잃으면 신을 원망할 것이다. 큰 병에 걸리면 신의 탓으로 돌리다가 병이 나으면 신에게 감사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매사에 신을 이용한다. 이것은 주인이 하인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인간이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전지전능한 신의 힘을 빌려 내가 원하는 것을 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주인이 직접 하지 않고 머슴을 시켜서 하는 것처럼 그 모양새가 비슷하긴 하다. 머슴이 일을 잘하면 칭찬하지만 못하면 화를 내거나 질책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신을 인격체로 여기기 때문에 일어나는 부작용이라고 한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 진정한 구도자는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한다. 삶이 슬픈 것도 내 책임이고 행복한 것도 내 책임이다. 내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것도 불안한 것도 모두 나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라 한다.

신을 인격체가 아니라 에너지로 이해해 보자. 에너지는 많을수록 더 많은 일을 해낸다. 그러면 원하는 일을 더 많이 해내려면 내가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는 수밖에 없다. 내가 에너지를 가지려면 일단 움직여야 하는데 활동을 해야 운동에너지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 운동에너지로 어느 정도 위치에 이르게 되면 그때는 위치 에너지가 생긴다. 그때는 더 많은 에너지를 내게 되어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큰 위치에너지를 가지지 않냐고 불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공평해야 한다고 누가 정하기라도 했던가. 자연계도 공평한 것은 없다. 공평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바람이지 현실은 다르다. 그럼 불평만 하고 앉아 있을 것인가.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만들며 살아가야 한다.

자연의 섭리는 공평하지도 불공평하지도 않고 그냥 끊임없이 돌고도는 것 같다. 평형을 이루었다가 무너지고 이루었다가 무너지고를 반복하며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것은 변한다는 무상(無常)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불공평하기에 운동이 일어나고 운동이 일어나면서 변화가 생겨나는 형국이다.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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