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그냥 해보면 어때?

by 장용범

좋아하는 일을 하라, 잘하는 일을 하라는 말들을 한다. 윤소정의 <인문학 습관>이라는 책을 읽다가 과연 그러네라며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게 된 내용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그 좋아하는 상태가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죽고 못 사는 연인들 사이도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시큰둥해지는 관계가 되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에다 중점을 두고 자신의 직업을 구한다거나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면 처음엔 좋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고 권태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또한 ‘잘하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이는 시간이 좀 소요되는 일이다. 무언가를 잘하게 된다는 것은 익숙하다는 것이고 반복적으로 시간을 들였다는 것이다. ‘실력도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게 내가 잘하는 일인가?’와 같은 어리석은 질문으로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은 없어진다’ 는 저자의 말처럼 내가 잘하는 일이 무언지를 찾는 것이야 말로 괜히 쓸데없는 시간낭비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서툴지만 자꾸 하다 보니 잘하게 되고 잘하다 보니 더 하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어 더 잘하게 되는 경우라 할 것이다.

처음부터 좋아하는 일도 아니고 잘하는 일을 찾는 것도 아니라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저자가 제시하는 제3의 길은 ‘몰입되는 일’이었다. 가난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한 자신의 적성이나 재능에 대해 늘 의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붓만 들면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보면 잘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일을 찾느라 괜히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냥 무언가를 직 간접적으로 경험해 가는 중에 자기도 모르게 몰입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유심히 볼 일이다.

사실 적성이나 재능이라는 것은 일부 천재들을 제외하면 과연 그런 게 있을까도 싶다. 정말 어쩌다 하게 되는 거다. 지금 생각해도 내 아버님은 정말 손재주가 좋으시다. 특히 기계나 부품 등을 조립하고 고치는 일에 능하신데 어릴 적 우리 집을 생각해보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아버지의 직업이 있었다. 바로 전자제품 수리업이었다. 그래서 최근 한 번 여쭤 본 적이 있다. 70년대 당시 라디오나 전축 등 전자제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셨던 분이 어떻게 전자제품 수리라는 간판까지 내걸고 업을 하셨는지 말이다. 나는 아버지의 답변을 듣고는 정말 배를 잡고 웃었다. 처음에는 소주 됫병에 석유를 파는 소매업을 했는데 사람들이 ‘곤로’를 찾더라는 거다. 곤로는 지금의 가스레인지 비슷한 건데 심지로 석유를 적셔 불을 피우는 가열 도구이다. 그래서 그 곤로를 도매상에서 가져와 비치해 두고 팔았다고 한다. 곤로를 팔다 보니 사람들이 심지를 교체하러 오기도 하고 고장 난 것도 들고 와서 몇 번 고쳐주게 되니 자신감이 생겨 ‘곤로 심지 교체, 수리’라는 간판을 내걸었다고 하신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수리’라는 단어에 꽂혀 라디오도 고쳐주냐고 물어보더란다. 그래서 두고 가라고 하고선 그 라디오를 분해해 만지작 거리다 큰 시장의 수리와 판매를 겸한 전파상에 들고 갔다고 한다. 그곳 사장님이 고장난 라디오를 고쳐주면서 주로 고장이 나는 부위를 알려 주고는 부품과 제품을 외상으로 공급해 줄 테니 소매와 수리를 겸해 보라고 했다는 거다. 그래서 라디오와 전축을 비치해 두고는 이번에는 ‘전자제품 수리’라는 간판까지 내걸었는데 사람들이 이것저것 고장 난 것 들고 오기에 고치면서 경험이 늘고 경험이 느니 더 잘 고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에 웃으면서도 사업은 이렇게 확장되는구나 싶었다. 80세가 넘으신 요즘도 아버지는 뭔가 고장이 났다고 하면 눈을 반짝이신다. 기계치인 나와는 달리 내 아버지의 몰입 대상은 단연 기계인가 보다.

만일 내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 크기가 10Cm 크기의 별 모양이라면 나는 오직 그 크기의 별 조각만 찾아야 한다. 하지만 나의 프레임이 10Cm 크기의 원 모양이라면 별 조각만이 아니라 세모 네모 등 그 크기에 맞거나 작은 온갖 조각들을 다 통과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름의 크기를 더 키운다면 더 많은 조각들을 통과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의 프레임을 너무 특정짓지 않는 좀 열린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그냥 한 번 해보라는 나이키 광고도 있지 않은가.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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