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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Dec 18. 2022

665. 상황에 대한 세 가지 선택

정치적으로 어두웠던 시절 자신의 신념대로 살다가 감옥에 다녀온 분과 모임의 일을 함께 한다. 개인적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늘 편안한 미소로 사람들을 대하시는 분이다. 어제는 모임에서 함께 저녁을 먹다가 정말 순수한 호기심에서 여쭈어보았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감옥생활의 하루는 어떻게 돌아가나요?” 나의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질문에 미소진 얼굴로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며  아침 6시부터 시작되는 감옥 생활의 하루를 들려주셨다.

재판 중이라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면 구치소에 있게 되는데 이때는 노역을 하지 않아 사람들은 무료함을 힘들어 했다고 한다. 그리고 교도관들에게는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인 모범수가 있는데 5공의 실세였던 장세동 씨라고 했다.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매일 6시 전에 일어나 모포를 각이지게 개고 좌정한 자세로 아침 점호를 기다렸다고 한다. 또한 아무리 낮은 계급의 교도관에게도 깍듯이 존댓말로 대했기에 그곳을 거쳐간 유명인 수감자 가운데 최고의 평점을 받은 인물이라고 했다. 반면 최악의 인물은 경찰청장과 고검장, 다선의 국회의원까지 지낸 한 인물이었다. 아침에 제때 일어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툭하면 고함지르고 욕하며 모든 걸 제멋대로 해 교도관들을 꽤나 힘들게 했나 보다.

산다는 것은 이런저런 일들을 겪는 과정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는 상황도 있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경우도 생긴다. 이럴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바꾸거나’, ‘받아들이거나’, ‘떠나거나’이다. 그런데 현명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많이 할까? 얼핏 ‘바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은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가장 쉽고 가볍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꾸거나 어딘가로 떠나는 것은 번거로우면서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어른들이 인생 금방이라는 말들을 하시는데 어릴 땐 실감이 안 나더니 지금은 과연 그렇다고 여겨진다. 31년의 직장 생활이 그랬고 지난 57년의 생이 그렇다. 마치 작은 압축파일 하나처럼 여겨진다. 내가 바꾸고 이루고자 했던 많은 것들, 그 과정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당시 변화를 위해 추진했던 일들은 이제 좀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돌아보면 한때의 시절 인연이었고 세상은 별로 변한 게 없다.

애쓴 결과가 그러하니 의미 없는 것 아니냐고? 그것도 아니다. 그 시간과 경험들은 고스란히 내 성장의 자양분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좀 젊었을 때는 과정에 충실했다는 말을 ‘패배자의 자기 위안’이라고 여겼었다. 결과를 얻지 못한 사람의 자기변명 같아서다. 하지만 지금은 인생의 성장에 주목하게 되었다. 성공은 소수에게 허용된 경우지만 성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 그리고 성공은 언젠가 내려와야 할 잠시의 희열이지만 성장은 지속이 가능하다. 또한 성공은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여러 조건들이 맞아야 하지만 성장은 자기 주도적이다. 나이들어 좋은 것도 있다. 더 이상 남의 눈에 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즉, 성공이란 것에 그리 끌리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일어나는 사건들을 좀 단순하고 편안하게 바라보게도 된다.


“너무 힘에 겹거나, 바꾸기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간단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에는 흥미를 갖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빠른 속도로 행복해진다.”_<타이탄의 도구들>


이제는 그럴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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