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용범 Dec 24. 2022

670. 참 무덤덤한 인사시즌

책임자급 인사발령을 마무리 지은 회사는 2023년을 준비하고 있다. 승진, 이동 등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지만 나에게는 별 상관없는 일이다. 연말 인사 관련 문서를 열람조차 안 했는데 이 부서로 발령 났다는 개인적인 연락들이 온다. 그냥 뒷일을 잘 부탁한다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별 기대는 않는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후임자를 잘 만나는 것은 정말 운에 달린 것 같다. 직장에서 전임자와 후임자는 좀 묘한 관계이다. 전임자가 행한 일에 후임자는 대부분 평가절하하는 게 보통의 직장 인심이다. 왜 그럴까? 그래야 현직에 있는 자신이 빛나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재임 시절 제아무리 업적을 남겼더라도 후임자가 그에게 고마워하거나 높이 평가하리라는 생각은 않는 게 마음 편하다. 후임자는 어떡하든 전임자의 그림자를 애써 지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짐이 너무 성급하면 직원들과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된다. 그래서 새로운 조직을 맡았다면  최소 6개월 정도는 기존의 방식을 따르다가 서서히 자기 스타일로 바꾸는 게 무리가 없었다. 현 정권만 봐도 급하게 전직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우려다 보니 쓸데없는 사회적 갈등만 깊어지는 것 같다.  

동료들은 나에게 언제까지 출근할 거냐고 묻는다. 12월의 마지막 급여도 받았으니 나의 거취가 궁금한가 보다. 그런데 굳이 안 나올 이유는 또 무언가 싶다. 어차피 1월 2일 이면 자연스레 퇴직이 실감 날 텐데 서둘러 그런 느낌을 가질 필요가 있나 싶어서다. 그냥 정상적인 출근을 하다 마지막 퇴근길에 그간 고마웠다며 직원들과 악수하고 헤어지는 게 깔끔할 것 같다. 퇴직한다고 일부러 찾아다니며 인사도 안 했다. 그들이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다 자기 일에 빠져 사는데. 다만 12월 동안 몇몇 지인들로부터 연락은 와서 식사 초대는 받았다. 최근에는 직원들 사이에 내 블로그가 알려져 화제가 좀 되는 것 같다. 그간 SNS도 피하면서 직장에 블로그가 알려지는 걸 일부러 피했는데 그나마 은퇴 즈음에 알려지게 되어 부담은 좀 덜하다.  

퇴직도 인생의 흘러가는 한 과정이려니 여긴다. 우선 회사에 대한 고마움이 크고 그렇다고 별 미련도 없기에 이 상황들이 담담하게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내년 2월에 계약직으로 다시 근무하는 조건이라 지금 퇴직의 감이 떨어지는 면도 있다. 퇴직 후 쉴 수 있는 기간이 고작 1개월이고 설 명절도 끼어 있어 장기간 해외 체류도 어려울 것 같다. 연말에는 부모님 댁에서 동생네 가족들과 나의 은퇴를 자축하는 모임을 가질 생각이다. 그동안 퇴직하는 선배들의 마음이 참 궁금했는데 내가 그 위치에 처해보니 별 감흥이 없다. 아무래도 출근 않고 지나봐야 알 것 같다. 감사한 일은 영업부서라면 많이 번잡스러웠을 텐데 직장 생활의 마지막을 후선 부서에 와서 정리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노력’이나 ‘열심’이라는 말에서 좀 멀어져야겠다. ‘성과’나 ‘효율’이란 말에도 거리를 두자. 대신 그동안 마음은 있었지만 잘 챙기지 못했던 ‘성숙과 배려’, ‘나눔과 성장’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며 살아야겠다. 이제 나도 그럴 때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669. 좋은 인생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