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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Dec 30. 2022

673. 우연을 필연으로

“커리어의 80%는 우연으로 결정된다. 자율적으로 커리어를 디자인하기 위해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내는 행동이 중요하다. “_크럼볼츠의 <계획된 우연이론>


우연을 운(運)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세상은 우연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게 많다. 그리고 그 우연을 놓치지 않은 결과 지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스탠포드 대학의 크럼볼츠 교수는 저렇게 주장했다. 저 주장에 따르면 운이 80%를 좌우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서양적 사고로도 우연의 비중을 크게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연을 스쳐가는 사건으로 끝내지 않고 나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80%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전에는 자신이 생각도 못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조경을 전공한 내가 은행과 보험에서 커리어를 이어온 것도 그렇긴 하다. 스티브 M 사피로는 <31% 인간형>에서 우리 주변에 목표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대략 31%이고 이들의 행복도가 다른 사람들 보다 높다고 했다. 목표 없는 인생은 문제 있는 인생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목표 없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우연이나 사건에 관심을 보이고 최대한 살려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우연한 사건이 앞으로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인생이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 전만 해도 은퇴 후 대륙횡단이나 여러 지역의 체류형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계획을 잠시 유보한 상태이다. 대신 강원도와 제주도를 담당하는 회사의 계약직 순회검사역을 지원하게 되었다. 어제 최종 합격통보를 받고 보니 인생 참 알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예상치 못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에겐 우연이란 말이 더 적합하겠다. 그럼에도 좀 설레고 있다. 동해안이나 제주도에 살면서 회사의 일 외에 책도 보고 글도 쓰면서 2년 정도 보낼 생각을 하니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도 2월부터 근무를 하게 되어 한 달 정도 여유도 있다.

은퇴 하루를 남겨두고 어제 책상의 짐을 좀 정리했다. 잡동사니들이 꽤 많았다. 부서장 자리를 비우고  나의 짐을 순회조사역 자리에 옮겨 두었다. 이제부터 나는 이 회사의 계약직 신입사원이 되었다. 현장 출장이 주 업무이고 본사는 한 달에 한 번 올라오는 정도지만 그래도 출입카드와 책상이 주어지는 게 고맙다.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하긴 하다. 나름 한 자존심 하는 사람인데 내가 부서장으로 있던 곳의 계약직으로 재취업을 했으니 말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회사와 나의 관계를 아주 간단하게 정리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나의 노동과 시간을 대가로 돈을 받는 곳. 이보다 명확한 정의가 또 있을까? 그 이상의 어떤 기대도 않는다. 여기에 내가 하고 싶은 바닷가 살아보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마다 할 이유가 없다. 최근 나는 나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행동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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