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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Jan 07. 2023

676. 비어있는 청와대를 보며

버스를 타고 청와대 앞을 지나게 되었다. 남산 순환버스였는데 예전과 달리 노선에 청와대가 추가되어 있었다. 과연 대통령이 빠진 청와대의 모습은 어떠할지 궁금했다. 청와대는 앞에 경복궁이 있고 북악산 아래에 위치해 있다. 배치로 보면 광화문 광장, 경복궁, 청와대, 북악산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청와대 앞길은 개방되어 있을 때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앞을 지난 때가 있었다. 하얀 정복을 입은 경찰의 초소가 있고 사복 경찰로 보이는 이들도 오가고 있어 마치 어떤 성역에 들어서는 느낌도 있었다. 호기심에 끌려 청와대 관람 신청도 했었다. 경복궁 주차장에 모여 신원을 확인하고는 단체버스로 청와대 춘추관 앞으로 이동하여 경내 관람을 했다. 그 후로도 가끔 차로 청와대 앞을 지나기도 했지만 관심에서는 점점 멀어져 갔다.

오후 4시쯤이었나 보다. 순환버스가 국립고궁박물관을 지나 청와대 길로 들어서는데 어쩐지 바람 빠진 풍선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절도 있는 경비의 모습도 없었고 그냥 어둠 속의 청와대 건물만 덜렁 있다는 느낌이었다. 잠시 감상에 젖어본다. 그동안 저 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흘렀던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까지 어렵지 않게 그들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들 대통령과 이 시대를 함께 살아왔다. 그들이 머물던 청와대였다. 어둠이 내린 오후의 불 꺼진 청와대는 더욱 흉가 같은 모습이었다. 가까운 광화문 광장의 화려함과는 무척 대조되었다.

대통령이 빠진 청와대는 철새가 날아간 빈 둥지 같았다. 청와대는 그 자체로는 별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살아있는 권력은 용산에 있을 텐데 그곳의 느낌은 어떨까? 이태원 쪽으로 가면서 대통령 집무실 앞을 지날 때가 있다. 그런데 아직은 좀 어색하다. 하얀 정복의 청와대 경비들은 그곳에서 문 앞을 지키고 있지만 어쩐지 너희들이 왜 여기에 있나 싶을 정도로 낯설다. 교통도 막히고 심지어 그곳에 권력이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익숙해지려면 좀 더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권력은 믿음에서 기인한다. 누군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대중의 믿음 말이다. 그 권력이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나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민주화된 국가에서 정치권력은 선거와 법률로 정해지지만 내가 뽑았던 권력이라도 나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게 다수결의 민주주의이다. 재미난 상상을 해보았다. 자신은 권력을 가졌다고 여기지만 누구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의 집단이 있다고 치자. 오른쪽으로 가자고 해도 ’그건 네 생각이고‘라며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는 참 머쓱할 것 같다. 권위주의가 통하던 시절에는 청와대의 위상도 높았지만 민도가 올라가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정치를 보는 눈은 나의 이익과 견주게 된다. 공동체를 우선하는 문화는 개인의 이익에 묻혀 점점 희석되어 간다.

이 시대는 리더 역할을 하기가 참 어려운 시대이다. 구성원들 대부분은 리더만큼 많이 배웠고 생각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리더를 따르는 것은 소속된 집단을 생각하기보다는 나에게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리더의 평가에 의한 승진이든 보너스든 하다못해 좀 편히 지낼 조건이든 개인의 이익이 없다면 그 리더를 별로 존중하지 않게 된다. 하다못해 집단을 위한 리더의 희생이라도 보고 싶어 한다. 시대가 이러하면 이제는 돈이 권력이 된다. 임기가 지나면 물러나는 정치권력보다 돈은 그래도 좀 오래가기 때문이다.    


해 저문 청와대의 쓸쓸한 모습을 보면서 권력이란 실체하지 않는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뢰란 보이지 않지만 그 신뢰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약속 지키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리더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근본임을 알게 된다. 리더가 된 자는 구성원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고 탓할 게 아니라 자신의 소통 방법과 신뢰를 주지 못한 그 무엇이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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