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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Jan 05. 2023

675. 경쟁 없는 사회라면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을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축구, 야구, 농구 등 스포츠 가운데 공으로 하는 운동은 경쟁을 통해 상대를 이겨야 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운동도 경쟁 없는 운동을 한다. 헬스나 산행, 걷기 같은 운동이다. 예전에 어느 지점장은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과의 갈등에 취약한 성격이라고 진단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경쟁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굳이 경쟁을 통해 이겨야 하나라는 마음도 있다. 아무리 사소해도 이긴 사람은 좋겠지만 진 사람의 기분은 찝찝한 게 사실이다. 오래전 화제가 되었던 <부모와 학부모>라는 공익광고의 내용은 이렇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 학부모는 앞서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 학부모는 꿈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아쉽지만 지금의 사회는 부모보다 학부모가 늘어나는 시대이다. 1960년대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태도 연구가 있었나 보다. 첫째는 성취지향성이다.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조직 내 승진을 추구한다. 둘째 연대적 지향성이다. 직장 생활을 통한 정서적, 감정적 유대를 우선하는 사람들이다. 셋째는 도구적 지향성이다. 노동을 생활수준의 향상 즉, 돈을 버는 수단이라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면도 보이는데 성취지향성이지만 승진이라는 결과 없이도 일이 되어가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일에서 더 이상 성취의 느낌을 받지 못하고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여기게 되면 조직과 일에 더 냉담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더 마음이 편하다. 노동이 단지 생활을 위한 돈벌이에 그치면 나머지는 그럭저럭 무시할 정도의 부수적인 것이 되고 만다. 이를테면 조직 충성도, 인간관계, 성취욕 등 정서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들을 말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


강수돌 교수의 경쟁 사회에 대한 내면적 고찰인 <팔꿈치 사회>를 읽다가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 경쟁이 사라진 학교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명문 대학일지라도 정원의 제한이 없어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 다만 졸업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 사원이 주주인 회사

임원이면서 사원이기도 한 회사를 말한다. 임원은 돌아가면서 하고 직원들 간의 급여는 약간의 차이만 난다. 회사의 발전이 직접적인 자신의 이익이 된다.


이상적일 것 같지만 이런 사회가 되어야 공존할 수 있다. 주변에서의 경쟁의 모습은 보통 이러하다. 첫째, 공간에서의 경쟁이다. 극장에서 앞줄에 앉은 이가 일어나면 뒤 줄에서도 일어난다. 좀 더 잘 보려고 의자 위에 올라가면 나머지 모구 의자에 올라서게 된다. 둘째, 시간적으로 일어나는 경쟁이다. 고등학교 선행 학습을 위해 중3 때 미리 공부한다. 너도 나도 하다 보면 차별이 없어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고등학교 공부를 선행한다. 지금의 결과는 유치원 때부터 공부 경쟁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셋째, 가격에서의 경쟁이다. 너도 나도 가격을 낮추다 보면 마지막 하나가 남는데 독점이 되고 나면 가격을 올리더라도 소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가격에 구입할 수밖에 없다.

경쟁 사회의 끝은 결론이 한결같다. 최종적으로는 자본과 권력을 가진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목욕탕의 여러 샤워꼭지에서 물을 틀면 하나의 하수구에 빨려 가듯이 모든 경쟁의 끝은 이렇듯 비슷한 모습이다. 남을 밟고 일어서야만 내가 산다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 게 길게 오래 그리고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다. 정말이지 쌀로 밥 짓는 소리처럼 당연한 말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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