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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Jan 08. 2023

677.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다면

6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면 어떤 마음이 들까? 정작 당사자는 그냥 멍하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 했다. 2019년 가족간병을 하는 이들을 위한 PTC 프로그램을 듣게되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오랜기간 가족의 간병을 하고 있거나 경험했던 분들이지만 나는 그 프로그램 자체에 끌려 신청했던 경우였다. 당시에도 느꼈지만 오랜 지병이나 치매걸린 부모의 간병은 다른 가족들의 정상적인 삶마저 위협한다.교육은 끝났지만 당시 함께했던 분들과의 교류는 지금껏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 이후 오프 만남이 없다가 모처럼 종로에서 모임을 가졌다. 무척 반가운 분이 오셨는데 4기의 암을 극복하고 참석하신 송 선생이다. 3개월 마다 정기 검진은 받고는 계시지만 특유의 밝은 미소에 혈색도 좋으시고 겉모습은 건강을 완전 되찾으신 것 같았다.

지금은 가족들과 떨어져 병원 가까운 곳에서 혼자 생활하고 계신다고 했다. 내 몸이 아플때면 나를 챙기는 가족들마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어떤 마음일지 대강 짐작은 간다. 지금은 가족을 포함 내가 챙겨야 할 모든 부담은 내려두고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한 분이셨다. 그런 면에서 모든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할 수 밖에 없다. 누구도 내 몸을 대신해 아플 수도 없고 내 삶의 고통을 나눌 수도 없으니 하는 말이다. 참석하신 한 분이 모두가 공감되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운명은 신(神)에게, 아픈 몸은 의사에게, 나는 내 마음을 챙길 것”이라고 하셨다.    

죽음의 문턱을 다녀오신 분은 주변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나중을 위해 쟁여두기 보다는 자연스레 나눠주고 버리는 삶을 살게되나 보다.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다.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서 필요한 돈 이야기, 80세가 넘으면 건강건진도 안 받는 게 좋다거나, 90대 노인이 받는 항암치료의 의미, 애국가만 나오면 경례를 하는 육사출신의 노인 이야기를 들으며 한 인간의 지난 시간이 아무리 화려했어도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숙명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고급 실버타운이 좋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70대 전후일 뿐이다. 돈이 노후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정주영, 이건희 회장의 끝은 좀 더 평안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노화, 죽음의 문제는 그 무엇으로도 해결되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은 그냥 순순히 수긍하며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살아야 할 때 죽겠다고 아우성치지 말고, 죽어야 할 때 살겠다고 발버둥치지 말 일이다. 정 선생이 세월의 지혜가 담긴 말씀을 해 주신다. “지난 일로 싸우거나 괴로워 말고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게 맞다.” 모처럼 참으로 귀한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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