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웬만한 일이 일어나도 좀 담담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건 분명 나이가 든 탓이다. 단순히 생각이나 의지만으로 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어제는 내년도 업무분장으로 고민하다 한 직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평소에도 약간 노조 간부 스타일의 직원인데 자신은 한사코 현 업무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만큼 그 일을 잘할 사람은 없다며 어찌나 강경한지 마치 노사협의를 하는 줄 알았다. 본인의 뜻은 알겠다며 돌려보내고는 처음에는 이 상황에 좀 답답한 마음이었으나 이내 본인의 마음은 그럴 수도 있겠지라며 털어버렸다. 이런게 어려운 거다. 상사의 권한으로 업무분장을 내가 원하는 대로 강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전체 분위기 등 보이지 않는 득실을 따져본다. 몇몇 직원은 내년도 업무를 사전 언질 주었는데 벌써 특정 업무는 기피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특히 세대를 건너뛴 직원들의 자기주장을 펼치는 논리를 보면 꼰대들이 흔히 쓰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목에까지 쓰윽 올라왔다가 내려가곤 한다. 이렇듯 세대를 달리하면 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나 보다.
그러면서 나의 20-30대 직장생활을 돌아보았다. 대부분이 좋은 시간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좀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사건들도 있었다. 직장 내 선배나 상사와 심하게 대립했던 적도 있었고 첫 승진 발령 난 곳에서는 영향력 있는 지방의원의 건설업체를 부도 처리하면서 거의 멱살잡이까지 가는 상황도 벌어져 상사들을 곤란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그리보면 나도 그리 편한 부하직원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은 은퇴하신 본부장님과 저녁을 먹으면서 요즘 직원들의 주장 강함에 대해 불편함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본부장님은 가소롭다는 듯 미소 지으며 ‘야, 네가 한 거 생각해 봐라’ 고 하시는 거다. 내가 펄쩍 뛰며 무슨 소리시냐고 제가 얼마나 깍듯했는데요라고 했더니 ‘깍듯 좋아하네. 네가 일하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안 한 거 있어?’ 라기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키득거리며 그날 꽤나 소주를 마셨던 것 같다.
한 세대는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세대 간 이전은 늘 후대가 못마땅한가 보다. 오죽했으면 기원전 1700년경 수메르 점토판에도 자식을 책망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제 직장생활도 끝무렵에 접어드는데 나의 주장을 너무 내세우기보다는 후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가급적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결국 이 조직은 그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해 가야 한다. 여기에는 한 가지 믿는 구석도 있다. 분명 저들도 요즘 것들은 정말 다루기 힘들어할 때가 올 것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