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5. 받는 돈, 맡기는 돈

by 장용범

같은 공간에 있어도 누군가에게는 놀이나 휴식의 시간이 다른 이에겐 노동일 수 있다. 대표적인 장소가 카페라는 공간이다. 카운트에 있는 직원과 객장에 앉은 손님은 노동과 휴식의 대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콘서트장에 가더라도 무대 위의 가수와 그 아래 관객들은 노동과 놀이 활동으로 나뉜다. 노동과 휴식을 나누는 차이는 돈이다. 돈을 받는 활동은 노동, 돈을 내는 활동은 놀이고 휴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다. 현대가의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아침에 눈을 뜨면 일하러 갈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고 한다. 그에게 노동은 재미있는 놀이였을 것이다. 돈은 참 신기한 재주가 있다. 아무리 좋아하고 즐기는 놀이라도 돈이 매개가 되면 대부분 노동이 되고 만다. 일단 놀이가 노동이 되면 그다음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고 만다.

오늘 다소 상반된 두 장소를 경험했다. 오전에는 실업급여 교육을 받으러 고용노동센터를 다녀왔고 오후에는 퇴직금 처리를 위해 강남의 어느 은행지점을 다녀왔다. 은행에서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별도의 공간으로 안내받아 업무처리를 했다. 이게 참 기분이 묘하다. 한 곳에서는 200명 정도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신청 양식을 시키는 대로 적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제일 마지막에 갈 거라며 질문도 못하는 분위기였지만 다른 한 곳에선 푹신한 소파에 앉아 차도 한 잔 대접받으며 일을 보았다. 둘 다 돈이 매개였으나 하나는 내가 받아야 할 돈이고 하나는 내가 맡기는 돈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그렇게 달랐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았다. 남의 돈을 받는 것은 역시 어렵다는 것이다. 나의 실업급여 책정액은 하루 66,000원이었다. 그것도 최초 한 달은 노동일수 8일 간만 인정받는다. 퇴사 후 대기시간과 실업인증 심사기간까지 고려하면 그렇다고 한다. 당초 한 달간 나랏돈을 기대했던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났다.

돈은 분명 우리의 삶에 자유를 준다. 하지만 무한의 자유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지육신 멀쩡한데 의식주를 남에게 의지하며 사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대체 돈은 어느 정도 있어야 경제적 자유라는 임계점에 도달할까? 이건 그냥 내 생각이지만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을 대하더라도 크게 부럽다는 생각이 안 든다면 그는 이미 경제적 자유를 달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가진 돈이 얼마인지는 상관없이 그럴 것 같다. 결국 돈도 마음의 문제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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