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8. 반나절 부산 중심가 여행

by 장용범

설날 부산 본가에 와 있다. 아내와 산책을 하러 나왔는데 자갈치 시장에 가서 문어를 한 마리 사 오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자갈치 시장이다. 이왕 가는 길에 인근의 국제시장, 광복동, 남포동까지 섭렵하는 추억의 부산 여행을 하기로 했다. 지금은 광안리, 해운대, 서면, 부산대 등 다양한 번화가가 생겼지만 광복동과 남포동은 오랜 기간 부산의 중심가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부모님이 계신 명륜역과 자갈치 역은 지하철 1호선으로 부산에서 제일 먼저 생긴 지하철이다. 나는 이 지하철이 처음 생겼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범어사가 있는 노포역에서 부전역까지 처음 개통되었다. 그 후 역을 하나씩 뻗어나가 지금은 다대포까지 이어진다. 처음 지하철 탔을 때 노란 티켓을 구입해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기계가 표를 싹 빨아들이는 게 신기했었다.

자갈치 역에 내리면 자갈치 시장과 국제 시장, 남포동과 광복동이 함께 있다. 명실공히 부산의 옛 중심가이다. 아내에게 국제시장과 남포동을 먼저 둘러보자고 했다. 대학시절 이곳은 참 자주 나왔던 곳이다. 극장들이 몰려있고 길거리 음식들과 맛집이 있었으며 자갈치 시장으로 들어가면 갈매기들의 끼룩대는 소리와 어선들, 자갈치 아지매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귀가 멍멍해질 정도였다. 대학 시절 남포동의 극장에서 보았던 ‘탑건’과 ‘사랑과 영혼’은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던 감동의 영화였다.

지금의 거리 활력은 예전만 못했고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 골목을 돌아서면 하고 기대했던 모습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았다. 같은 장소를 다른 시간에 와서 보니 내가 담아 둔 장소의 기억들은 이미 37년 전의 일로 현실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나마 몇 군데 노포들이 남아있어 반가웠다. ’18번 완당집‘은 그때나 지금이나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줄 서기가 귀찮아 간판만 확인하고 만다. 다음으로 생각난 집은 ‘개미집’이었다. 낙곱새 볶음을 저렴하게 먹었던 집이었다. 그때는 2층에 있었는데 1층 식당은 한산한데 사람들이 2층으로만 몰려가던 곳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좁은 골목을 돌아서니 ‘개미집’이 그 자리에 있다.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사업이 확장되었는지 건물이 두 개로 나누어져 있었다. 1972년부터라는 노포의 간판이 믿음을 준다. 이곳에서 추억의 낙곱새를 시켜 밥을 한 그릇 뚝딱 비웠다.

식사 후 좀 더 근처를 돌아 보았다. ‘대각사’와 ‘미화당 백화점’이 여전한지 궁금했다. 남포동 한복판에 있는 생뚱맞은 절이 ‘대각사’였다. 역시 사라지고 없었다. ‘미화당 백화점’은 큰 프랜차이즈 신발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당시 백화점 건물의 3층으로 가면 용두산 공원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어 자주 이용했던 곳이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골목길에 접어드니 ’할매집 회국수‘가 보인다. 60년의 노포다. 당연히 그 할머니는 돌아가셨을 것이다. 시내를 돌아보고는 자갈치 시장으로 들어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장의 활력은 여전해서 반가웠다. 문어 파는 할머니에게 연세 드신 어머니가 꼭 여기서 사 오라고 했다 하니 흔쾌히 값을 깎아주신다. 꿈틀거리는 문어 내장을 단숨에 제거하는 모습이 고수 같았다.

설을 앞두고 아내와 반나절 부산 중심가 여행을 했다. 나의 청춘시절에 비해 남아있는 것보다는 사라진 게 더 많은 공간이었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은 이처럼 회상에 잠기게 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좋기는 매한가지다. 그때는 청춘의 활력이 있었고 지금은 중년의 안정과 편안함이 있다. 시간이 흘러가듯 인생도 한곳에 머물지 않음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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