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가 있는 동안 엉뚱한 곳에 배송되었던 책이 마침내 도착했다.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 님의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이다. 호스피스 병동은 현대의 어떤 의술로 살릴 수 없는 환자들이 자신의 남은 여생을 정리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 저자는 수많은 죽음의 형태를 보았고 그 경험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죽음은 독학할 수 없다. 타자로부터 배워야 한다. 시간과 마음을 투자해서 죽음을 배우면 죽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달라진다.’_<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의 서문에서
이번 설 명절은 좀 특이했다. 본가와 처가 어른들의 점점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보았다는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고모님의 장례식까지 다녀오고 나니 더욱 인간사의 마지막인 죽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장인 어른의 중환자실 입원 중 CPR을 실시했던 의사가 전했다는 말이다. ‘현대 의술로 환자의 생명만을 연장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환자분에게 다시 한 번 그런 상태가 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는 보호자분들이 미리 합의해 두시는 게 필요합니다.’ 90대 노인에게 산소호흡기로 숨을 쉬고 식도로 직접 음식을 공급받는 상황을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말한다.
요양병원에 계신 장모님이 열심히 운동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셨단다. 그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전해듣고는 사위의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진다.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소망임을 아는 까닭이다. 우리는 언제나 살아가는 것만 생각하지 죽음은 남의 일처럼 여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수용하지 못하는 게 죽음이다. 그런데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죽음을 배워두면 죽음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 적어도 자신의 죽음을 미리 배워 둔 권력자라면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고 죽음을 잘 배운 부자들이라면 없는 사람들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도 드물 것이다. 어쩌면 인간사의 갈등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저자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암에 걸렸고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죽음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누구나 거처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어릴 때는 동네에 청사초롱이 걸리는 일이 있었는데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표식이었다. 이제 그런 표식은 사라졌다. 오늘날의 죽음은 병원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노부부가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그 분은 자신의 임종을 익숙한 집에서 맞이하고 싶어했다. 자식들은 그리하자고 의견을 모았는데 할머니가 절대 안 된다고 반대를 했다. 그 이유가 할아버지가 죽음을 맞은 방에 어떻게 들어갈 것이며 그 침대를 어떻게 쓰겠냐는 말이었다.
설 명절 연휴였지만 집안 어른들의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즐겁고 들뜬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인생의 큰 아젠다인 ’죽음‘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수 많은 죽음을 목격했던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진정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죽기 직전까지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얼마나 행복했는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