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5. 백수 생활의 원칙

by 장용범

1월의 마지막 날이다. 어떤 의미일까? 출근 전날이면서 은퇴 후 휴식이 끝나는 날이다. 이처럼 시작과 끝은 맞닿아 있다. 돌아보면 달콤했던 한 달이었다. 무위도식이라는 말이 있다.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고먹는다는 것으로 그리 좋은 뜻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여건만 된다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위도식이다.


모든 생산과 유통기능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담당하고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된 세상을 상상해 보자. 그야말로 무위도식의 세상이다. 무언가를 하는 것은 자유이나 안 해도 별 문제는 없다. 일을 하든 않든 의식주는 공평하게 제공된다. 자, 그런 환경에서 인간은 어떤 식으로 살게 될까? 짧은 한 달이었지만 비슷한 환경을 경험해 보았다. 그래서 무위도식 즉, 보편적인 백수의 삶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시간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다.

더 자고 싶으면 잤고 모처럼 본가에 내려가 마음껏 머물러도 되었다.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집에 있고 싶으면 있고 나가고 싶으면 나갔다.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만났고 만나기 싫으면 아예 약속을 잡지 않았다. 24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둘째, 간섭하거나 지시하는 사람이 없다.

직장 생활이란 일정한 틀에 갇혀 지내는 삶이다. 그 안에는 규정과 수직적 인간관계가 존재한다. 백수는 그런 틀에 갇힐 이유가 없다. 복잡한 출퇴근 시간을 피해 시내를 돌아다녔고 때로는 늘어지게 낮잠도 잤다. 그래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누군가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삶, 이게 참 좋았다.

셋째, 먹고사는 것에 지장이 없다.

일을 하지 않아 당장 끼니를 굶는 상황은 백수의 삶이 아니다. 백수는 어떤 식으로든 생활이 해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현재의 대한민국 복지 수준이 백성이 굶어 죽을 정도로 내버려 두는 정도는 아닐 것이니 누구라도 마음만 내면 백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넷째, 타인의 인정을 구할 필요가 없다.

사회생활의 모티브 중 하나가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만일 인정의 욕구를 내려둘 수만 있다면 참으로 마음 편한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백수는 그래도 된다. 사장으로 은퇴하나 대리로 은퇴하나 회사를 벗어나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인정을 내리는 그도 크게 별수 없음을 알게 되면 타인의 인정을 구하는 것이 참으로 부질없다는 생각도 갖게 된다. 이게 참 마음 편한 구석이 있다.

이 모든 것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자유’이다. 백수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다. 네 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들자면 ‘타인의 인정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부분은 좀 제약되더라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삶은 자유를 느끼게 한다. 어떤 것을 하는 이유가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일 때 그는 좀 더 자유로운 삶에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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