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세우는 것이 필요한가 싶을 때가 있다. 많은 경우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월 첫날 예전 직장에 다시 출근을 했다. 당초 담당지역을 강원, 제주로 알았는데 지점수의 적정배분 차원에서 경상, 제주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해는 된다. 그간 설계사들이 대거 떠난 상황에서 리크루팅은 부진했고 많은 지점들이 문을 닫았다. 이리되면 강릉지역을 포스트로 두고 활동하려던 계획은 처음부터 차질을 빚게 된다. 하지만 이 상황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부모님이 계신 부산에 머물면서 함께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도 그게 더 낫지 않으냐고 했다. 이처럼 우리가 세우는 계획은 종종 계획자체로 끝나고 마는 화이트 플랜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보면 잘 된 경우도 많다. 그러니 계획대로 안 되었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고 변화된 여건에서 융통성을 두며 적절히 조절해 가면 될 일이다.
회사의 기획부서는 조직과 예산을 가지면서 계획 세우는 일을 주로 한다. 늘 조직의 미래를 바라보는 곳이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크게 질책받는 곳은 아니다. 사업기간 중 변수는 생기게 마련이고 그것이 당초 계획을 이행하지 못하게 할 정도이면 대체로 수긍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라서다. 반면 영업부서는 매일매일이 현실이다. 하루가 지나면 하루의 성과가, 한 달이 지나면 한 달의 성과가 드러나고 목표치에 달성여부가 바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기획이 조직의 미래를 보는 일을 한다면 영업은 현재를 살아가는 일을 한다. 오랜 직장생활을 했지만 연간 계획과 일치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목표는 초과 달성되기도 하고 미달하기도 했다.
가끔 높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본다. 빌딩 유리창을 청소하는 사람이나 고층 빌딩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머물기 조차 힘든 곳에서 그들은 일까지 한다. 그런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는데 절대 아래를 보지 말고 위로도 보지 말 것이다. 오직 지금 머물러 있는 그 자리만 보며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야 말로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끝판왕인 셈이다.
호스피스 의사인 김여환 님은 하루하루 유명을 달리하는 병동의 환자들을 보며 자신은 내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썼다.
‘호스피스 병동에 근무하면서 나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일을 포기하면 뜨거운 오늘이 있다. 나중에 행복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게 아닐까? 오늘을 즐기는 사람이라야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얼마 남지 않은 삶도 즐길 수 있다. 이 순간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이다.’_김여환의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중에서
개인에게 계획은 너무 자세히 세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대강 30% 정도 세워졌으면 나머지는 진행하면서 완성해 가는 게 더 효과적인데 계획의 속성은 늘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오늘 세운 계획을 내일 다시 보면 또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계획은 적당히 세우고 당장 오늘의 삶을 살고 즐기는 게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지름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