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1인 기업가 홍 대표님을 만났다. 은퇴 후 첫 만남이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사업적으로 고민이 많으신 것 같다. 능력있는 개인사업자의 치열함을 엿보니 새삼 한 직장에서 은퇴까지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대표님이 툭 던지는 말에서 은퇴 후 느슨해진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은퇴 후 달라진 것이 출퇴근 시간을 피해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은퇴자가 누리는 특권이라 여겼지만 그렇게 한 달을 지내보니 하루가 점점 늘어지고 내 몸이 축 처지는 것 같았다. 하루의 시작이 늦어지니 몸도 마음도 풀어져 생기도 사라지는 것 같다. 앞으로의 업무도 출장이 주여서 이런 패턴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어떤 상황이든 하루의 시작은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아무래도 다시 새벽 기상으로 돌려야겠다.
서울에는 카페가 참 많다. 그만큼 카페 이용객도 늘어나 한 해의 커피 소비량은 매년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건축가 유현준은 서울에 카페가 많은 이유로 개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부족에서 원인을 찾는다. 적어도 커피값 정도로 개인 공간을 시간제한 없이 확보할 수 있으니 비용대비 효율성이 높다는 말이다. 하지만 카페는 무언가를 집중해서 하기에는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 일이나 공부보다는 휴식이나 대화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반면 도서관이나 공유오피스는 목적성이 강한 장소이다. 사람은 상황과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면 그에 맞는 환경을 조성하면 된다.
지역 배치가 되면 아무래도 거점지역의 공유오피스 이용을 고려해야 겠다. 비용은 들겠지만 일상 루틴을 잡으려면 투자를 좀 해야될 것 같다. 그리고 비용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으로 만회하자. 무엇보다 고정된 업무 장소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돈벌이의 원천은 크게 세 곳이다. 누군가로 부터 얻거나, 돈이 돈을 벌거나,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중 대부분은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댓가로 돈을 벌고 있다. 앞의 두 방법에 비해 고달픈 게 사실이다. 그게 싫어서 은퇴 후에는 덜 먹고 덜 쓰더라도 그냥 놀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게 참 이상하다. 마음을 그리 내니 긴장감도 사라지고 활력도 현저히 떨어지는 것 같았다. 몇몇 단체에 재능기부는 하고 있지만 급할 것 없는 일들이라 자꾸만 미루게 된다. 역시 일이란 확실한 보상이 따를 때 더 몰입된다는 것을 알았다. 꼭 그게 돈일 필요는 없겠지만 돈은 일에 대한 보편적 보상이고 일종의 게임머니 같은 것이다. 사람이 은퇴하면 느릿느릿해지고 빨리 늙는 이유가 경쟁에서 물러났기 때문인가 싶다. 결국 사람은 돈벌이 경쟁에 뛰어들어야 좀 더 활동적으로 되나 보다. 여러 사례에서 보듯 물려 받은 돈이 많거나 돈이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은 타락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자신의 활동으로 돈 벌 기회가 있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겠다. 좀 건강한 스트레스는 받자.
은퇴자들 모임은 그 기운이 점점 쪼그라드는 면이 있으니 활동적인 삶을 살려면 은퇴자들 모임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고 했다. 내가 은퇴자이면서 그런 이야기를 든는 게 어색했지만 확실히 그런 면이 있다. 은퇴자들이 미래를 이야기 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왕년에 이랬다 저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가 어울리는 사람을 보면 된다.
내가 은퇴자를 대상으로 책쓰기 모임 같은 것을 구상한다고 하자 은퇴자들은 병원비 말고는 돈을 안 푼다고 했다. 분명 가진 것은 많은데 자기계발을 위한 돈은 안 쓴다는 말이다. 그 이유가 시간이 많기 때문이란다. 이해가 된다. 세상의 자원은 돈, 시간, 사람이고 이들은 서로 교환된다. 시간이 부족한 30-40대는 돈을 써서라도 시간을 확보하려 하지만 은퇴자들은 돈 대신 시간을 들이거나 다른 이의 노하우를 공짜로 얻으려는 경향이 있나 보다. 그래서 분명 큰 시장이긴 한데 돈이 안 도는 시장이라는 말을 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활동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결국 만남이다. 만남을 통해 무언가가 이루어진다. 활동한다면서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다면 새로운 기회는 얻기 힘들다. 어떤 만남을 가질 것인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만남이 일상인 회사원과 달리 1인 기업가에게는 적극적인 만남이나 모임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