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면
좀 허망한 결말에 허탈감을 주는 드라마들이 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파리의 연인’이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주제로 한 내용으로 방영 당시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드라마였다. 여성들이 심쿵 할만한 유명한 대사도 많았다. “이 안에 너 있다.” “왜, 말을 못 해. 이 남자가 내 남자라고 왜 말을 못 해?” 등이 생각난다. 그렇게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지만 마지막이 참 허망하게 끝나는데 그 모든 게 주인공의 꿈이라는 결론이다.
살다 보면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일이 있고, 꿈이라면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도 있다. 당연하지만 좋은 일은 현실이길 바라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그저 꿈이었기를 바란다. 나이 때문일까? 지난 일들이 가끔 꿈을 꾼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사람이 죽을 때면 일생의 일들이 압축적으로 휙 지나간다는 말도 있던데 온갖 사건들을 다 겪더라도 그 모든 게 꿈이었다면 마지막엔 그저 허망할 것 같다.
그런데 꿈과 현실에도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끝이 나다는 것이다. 꿈은 잠에서 깨어나면 끝나고 현실은 한 인간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세상의 종말을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어차피 한 인간의 죽음은 그에게는 세상의 종말과 같아서다. 꿈속에서도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은 널뛰듯 일어난다. 적어도 꿈속에 있을 때는 꿈이나 현실이나 다를 게 없다. 어쩌면 지금 현실이라 여기는 시간들도 장자의 ‘호접몽’처럼 하나의 꿈일지도 모를 일이다. 꿈과 현실을 같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이지만 끝이 있는 사건의 연속이라는 면에서는 공통점도 있다.
가끔 꿈을 꾸면서 이건 꿈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를 두고 ‘자각몽’이라고 한다. 좋거나 싫거나 현실을 살면서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살아간다면 세상 일을 대하는 마음도 좀 너그러워질 것 같다. 은퇴 후 참으로 편안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꿈으로 치면 한창 좋은 꿈을 꾸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이 편안한 마음을 방해하는 것이 다가올 일을 미리 생각하는 마음이다. 좋은 꿈을 꾸면서 깨어날 것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 어차피 모든 꿈은 깨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니 좋은 꿈을 꾸고 있다면 지금 실컷 꿈꾸고 누리자. 인생 전체에서 이런 날들이 얼마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