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올해 사업계획서 작성해 줘.
B: 안정적으로 20% 투자 수익을 위한 주식 종목 추천해 줘.
C: 이번 국회의원 후보자 가운데 지역 발전을 위해 적당한 후보는 누구야?
검색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챗 GPT 이야기다. 이게 왜 혁신일까? 이제부터 인공지능이 세상의 수많은 데이터와 지식을 기반으로 인간을 대신해 일하고 결정할 수 있는 특이점이 열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 기술은 이렇게 발전하는데 어떤 지역에서는 폭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원시성을 보이고 있으니 인간의 양극성은 참 아이러니하다.
세상이 좋아졌다는 생각도 들지만 저런 기술이 보편화되면 인간은 뭘 해 먹고 살려나 싶다. 당연히 인공지능의 경쟁 대상은 아닐 테고 많은 부문에서 직업적 위기를 느낄만하다. 전문적인 영역일수록 인공지능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데 많은 법률과 판례,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 등에서 인간이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단순노동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림이나 소설 창작 같은 창의적 영역마저 인공지능이 가능하다니 하는 말이다.
한편으론 너무 비관적으로 볼 것도 아닌 것 같다. 이제 그런 일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간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알파고가 인간보다 바둑을 잘 둔다 해서 인간이 바둑을 안 두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가 발명되었다고 해서 육상경기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나 감성의 문제이다. 이제 수학, 논리, 기술 등의 이성 영역은 인공지능에 맡겨두고 철학, 윤리, 인류애 등의 감성 영역을 인간이 맡아야 될 시대이다. 칼을 요리사가 쥐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지만 강도가 쥐면 사람을 상하게 하는 흉기가 되고 만다. 하지만 칼은 잘못이 없다. 이렇게 멋진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 지금의 시대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가르쳐야 할 시대이다.
이제 인간성을 벗어난 사유하지 않는 인간에게 주어진 기술은 아주 위험한 흉기가 되고 말았다. 한 인간이 발사한 미사일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더라도 정작 그의 죄책감은 클 것 같지가 않다. 그의 직접적인 행위는 버튼 하나를 누른 것이지 사람을 직접 죽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게 무서운 일이다. 다음을 인공지능에다 요청했다면 어떨까?
A: 저 원자력 발전소의 전산망을 해킹하는 법을 찾아서 원전 사고를 일으켜 버려.
B: 저 지역의 사람들에게 미사일을 발사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네가 직접 발사시켜.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성이 회복되어야 할 이유는 커지지만 지금의 세상은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원시성만 더 발현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