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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 고정 공간이 필요해

by 장용범

나에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역마살이 있는 것 같다. 휴일에도 집에 가만 있지를 못한다. 나에게 집은 편안한 휴식과 가족의 정을 나누는 공간이고 바깥세상은 도전과 성장, 배움의 공간이다. 다른 이들도 그럴테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겠다. 그래서인지 집에서는 휴식 이외의 무언가를 하는 게 참 어렵다. 대부분 소파에 누웠거나 TV 앞, 아니면 아내나 딸들과 수다를 떨며 키득거리고 있다. 집에서는 그냥 그러고 싶다. 요즘은 휴대폰 때문에 각자의 시간을 보낼 때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집은 거실에 있는 큰 테이블 덕분에 가족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편이다.

가정에서 쓰기엔 좀 크다 싶은 테이블을 두게 된 것도 내 고집 때문이다. 스타벅스에 가면 중앙의 큰 원목 데이블이 좋아 보여 언젠가는 저걸 가져야지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인터넷에서 제작업체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집에 두기에는 너무 클 것 같다는 아내를 설득했고 제작업체를 방문해 스타벅스처럼 전기 콘센트까지 갖춘 형태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TV가 안방으로 들어가고 거실을 책장에 둘러싸인 서재로 만든 덕에 이 테이블은 가족들이 가장 자주 모이는 공간이 되었다. 다만 당초 의도와는 달리 책 읽는 시간보다는 수다떨거나 밥상, 술상의 역할을 더 자주 하지만 그래도 가족들의 소통을 생각하면 그게 더 긍정적이다. 집에는 가구 선택과 배치에 따라 가족들의 동선과 머무는 시간이 달라진다. 지금도 거실의 큰 원목 테이블을 보면 선택이 참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은퇴를 하고도 평일 낮에 집에 머무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세상을 탐험하러 가는 것이다. 관심사를 쫓아 몇몇 단체에서 활동은 하고 있지만 꼭 그게 아니어도 밖으로 나간다. 이제는 재취업으로 업무상 출장까지 다녀야 하니 그야말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셈이다. 바깥에 다닐 때도 어느 정도는 고정적으로 가는 장소가 필요하다. 직장인은 그 장소가 회사겠지만 은퇴 백수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공공 도서관이나 카페도 있지만 요즘은 공유오피스도 대안이다. 매월 비용은 부담이지만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준비 하기에는 적당한 장소 같다.

장소와 공간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크다. 인간이 특정 장소에 들어가면 그 장소에 맞는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니 우리가 시간을 투여해 무언가를 하고자 하면 먼저 장소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한다. 그리고 그 장소는 너무 폐쇄적이거나 자유분방 한 곳 보다는 적당한 긴장감을 갖춘 곳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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