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확진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옛 상사셨던 본부장님이 그랬다. 지난 1월에 뵈었을 때 소변에서 전립선 암이 의심스러운 수치가 나와 정밀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셨다. 집안에 신장이나 전립선이 안 좋은 유전적 성향이 있다며 근심어린 눈빛이셨다. 그 후 연락하니 다행히 암은 아니었다는 결과라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뵈었다. 동갑인 양 부장도 참석해 조촐한 식사를 함께 했다. 우리는 직장에서 만났지만 거의 형 동생같은 인연들이다. 설렁탕 한 그릇 하고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서 수다를 뜬다. 셋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직장에서 은퇴를 했다. 둘째, 부모 또는 어머님이 살아계시다. 세째, 자녀들이 사회진출을 했거나 준비 중이다. 네째, 그럭저럭 안정적으로 산다. 본부장님은 다음과 같이 양 부장과 나에게 머지않아 닥칠 일을 알려주셨다.
# 부모의 치매 문제에 직면한다.
자식들이 50-60대면 부모는 80대 또는 90대이다. 이 연세가 되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치매 환자이다. 치매있는 어머니를 보는 아들의 마음은 여러모로 복잡하고 힘들 수 밖에 없다. 함께 지내더라도 결국 요양병원으로 모실 수 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가지 않으려는 어머니와 딸 형제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가족간의 그런 갈등을 피하려면 어머니를 혼자만 모시지 말고 한 달 정도 다른 형제들 집에도 보내드려 직접 보고 느끼게 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나중에 요양병원에 가시는 상황이 오더라도 형제간의 갈등을 정리할 수 있다.
# 외국여행이 두려워진다.
심근경색으로 수술까지 한 본부장님은 이제 외국 여행이 두렵다고 했다. 다른 이유보다 외국에서 긴급 상황이라도 생기게 되면 1-2억 날아가는 건 순식간이라고 했다. 누구보다도 강한 성품의 본부장님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의외였다. 60대는 그럴 나이인가 보다.
# 자식들은 유학 안 보내는 게 좋다.
우리는 자녀들을 외국 명문 대학에 유학 보내 그 곳에 정착시킨 분들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결론은 나이들수록 외롭다는 것이다. 키울 때는 공부 잘하고 어디 내놔도 자랑거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와 자식은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부모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자녀들은 자녀대로 자기 식구 챙기기에 바쁘다. 국내에 있으면 명절이나 생일 때 볼 수라도 있지만 외국에 있다면 상황이 다르다.
# 은퇴 후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나이들수록 돈 쓸 일이 점점 줄어든다. 자식들이 사고 안 치고 부부의 건강만 괜찮다면 크게 돈이 들어갈 일이 없다. 친구들도 자주 만나다 보면 대화의 주제도 뻔하고 정체된 느낌이 들어 모임에 나가는 횟수도 줄어든다. 이럴 때는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나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 같은 게 있으면 좋다. 그런일은 갑자기 되지 않으니 평소에도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시도해 볼 일이다.
그 외의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렀다. 마음 맞는 남자들의 수다는 꼭 술이 돌지 않더라도 제법 길게 이어질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