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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 살아남은 게 강한 것

by 장용범

강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상대를 아니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폭의 세계에서 “야, 꿇어!” 하면 덩치 큰 꼬붕들이 납작 엎드리는 상황이니 이는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이 상황도 계속 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때 자기 밑의 꼬붕이 점점 힘을 키워 언제든 자신을 치려 하는데 정작 본인은 나이 들고 기력도 쇠해지게 마련이다.

국제관계는 어떠할까? 조폭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데 마침 좋은 책을 한 권 접하게 되었다. ‘정세현의 통찰’이 바로 그 책이다. 저자 정세현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남북 관계를 이끌었던 통일부 장관을 지낸 분이다. 내가 다녔던 대륙학교 교장 선생님이기도 해 가끔 모임에서 뵙는데 여든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여전히 정정하시고 적절한 유머를 섞어 주변을 편안하게 하시니 인기가 무척 많으시다. 이제는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간 트럼프와 김정은의 하노이 회담 결렬에 너무도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책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강하다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조폭의 세계나 국제관계나 서로 강자가 되려는 면에서는 똑같다. 그러면 강하다는 것은 어떤 속성인가? 얼핏 떠오르는 이미지는 ‘크다, 많다, 높다, 빠르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게 영원한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큰 것은 작아지고 많은 것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제국이나 태양이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도 서서히 기울더니 쪼그라들고 말았다. 앞으로 미국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새로 나타나는 강자가 중국이라고 한들 자기들의 강함을 내세워 주변국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해결책은 내가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기에 대부분의 시간은 강자들 틈에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상황 파악을 자칫 잘못하면 이내 강자에게 호되게 당하거나 흡수되고 만다.


그런 면에서 한반도 위의 나라들은 그간 참 잘 버텨왔다. 대륙에 붙어 있는 작은 반도의 운명임에도 지금껏 독립성을 유지하며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다. 심지어 한때 중국 전체를 지배했던 몽골족이나 만주족은 자신의 언어조차 없이 쪼그라들었는데 우리는 독자적인 언어체계까지 갖추고 있다. 사대주의라고 비난하지만 그게 약자가 살아남는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자연계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한 것이다."라는 말은 진리이다. 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여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것을 압축한 말이다. 오늘날 국제정세는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갯속이다. 더구나 한반도는 4대 강국들이 주변에 늘어서 있다. 어느 한 쪽에 찰싹 달라붙는 외교는 정말 위험해 보인다. 역사적으로 보면 상황 파악 잘못해 일본을 무시하다 임진왜란을 겪었고, 명나라 힘만 믿다가 청나라에 깨진 것이 병자호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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