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 벌써 두 달이 지나갔다. 작년 은퇴 후 꾸준히 무언가는 해왔던 시간들이었다. 1, 2월의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이런저런 일정들로 제법 빡빡한 모습을 보여준다. 은퇴 전 예상했던 늘어지는 여유는 아니지만 적당한 일거리와 조화를 이룬 생활이었다. 지금도 지역 문인협회의 총회 준비를 하고 있다.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은 조직이라 아무래도 PC 다루는 일을 전담으로 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라는 면에서 보면 이것도 좋은 일이다. 2월에는 이전 직장에서 새로운 일도 다시 시작해 어제 첫 급여가 들어오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아는 선배님이 남미 여행을 하시며 꾸준히 페북에 근황을 올리신다. 보험사 임원을 마지막으로 지금은 산정호수 근처에서 전통주 공장을 운영하고 계신 분이다. 은퇴를 주제로 책도 내고 강의도 다니시는 등 바쁜 일정 중에 모처럼 긴 여행을 떠나셨나 보다. 그런데 보아하니 편안한 여행 같지가 않다. 남미의 멋진 풍광 앞의 선배님 모습은 거친 산 사나이 같았다. 어쩌면 그곳에 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상당한 길을 가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연의 멋진 풍경은 아무래도 도시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어서다. 페북에서 선배님의 근황을 보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생겼다. 저 선배님은 저곳을 왜 가셨을까? 편안한 여행도 아니고 지구 정반대 편에 가야 하니 경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60대 중반의 연세에 체력적으로도 힘드실 것 같다. 젊은이들처럼 단순히 나 여기 다녀왔다는 페북 자랑용은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좋아요, 대단해요라는 댓글이 많은 곳에 좀 뜬금없지만 그곳에 왜 가셨는지 여쭈었다. 답변을 주셨는데 본인도 찾는 중이지만 그보다는 평상시에는 벌여 놓은 일에 몰입하다가 한 번씩 이렇게 시간을 내어 장기 여행을 다니신다고 하셨다.
작년에 은퇴했던 벗들의 근황이 궁금해 최근 연락을 했었다. 시골로 내려가 농사짓는 경우도 있고, 그냥 별일 없이 집에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도 좋아 보인다. 은퇴 후 삶은 각자의 스타일대로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럼 나의 경우는 어떨까? 그러기 위해선 나의 성향부터 알아야 한다. 한 마디로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이고 한곳에 메여 지내는 것을 싫어한다. 유지관리하는 일보다는 새로운 것을 뚝딱거리며 만들어 가는 것에 몰입감을 느끼고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것이 나오면 먼저 접하는 편이다.
나의 은퇴생활도 이런 성향대로 가는 것 같다. 일단 새로운 일을 찾았다. 대부분 출장을 가는 일이라 성향에 잘 맞다. 출장을 여행 삼아 돌아다니면 될 일이다. 관심 있는 단체에 재능기부 방식으로 일을 맡고 있어 직장과는 다른 새로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것을 하나 더해 개인 콘텐츠를 소재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지 탐색 중이다. 너무 번잡스럽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적절한 조화를 유지하려 한다. 나는 그 선배님처럼 평상시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다 한 번에 몰아서 여행 떠나는 성향은 아닌 것 같다. 크게 무리하지 않고 자박거리며 놀다가 언제든 훌쩍 여행도 떠날 수 있는 그런 게 더 좋아 보인다. 이제 꼭 무언가를 해야 하고 되어야 한다기보다는 재미와 흥미에 끌려 하다 보니 되면 좋고 안되어도 그만인 작은 일들이 좋다.
생명 활동은 어떤 현상일까? 잠시도 가만있는 게 아니다. 피가 돌지 않는다거나 심장 같은 몸속 장기가 멈춘다는 건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생기가 있다는 건 움직인다는 것이고 활동한다는 의미이다. 다만 이제는 왕성한 생명활동보다는 좀 작고 소소한 생명활동이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