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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 어렵고도 험난한 자주 독립의 길

by 장용범

삼일절이다. 크라스키노포럼의 정기총회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작년 한 해동안 큰 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우크라이나 전쟁 후 러시아와 관련된 활동을 하기에는 조심스런 면이 있어서다. 총회 참석인원을 보니 10명 안팎으로 큰 공간이 필요하지는 않아 내가 다니는 공유 오피스의 회의장을 빌렸다. 회의장으로 가는 동안 시내 곳곳이 시끄러웠는데 삼일절을 맞아 진보와 보수 시위대들이 서울역과 광화문 일대에서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어느 쪽이든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크라스키노의 안중근 단지동맹비

총회 자료 준비로 애를 좀 먹었다. 재능기부로 사무국 일을 맡았지만 이것도 제법 챙길 일이 많다. 회원들이 낸 회비로 운영되고 있지만 재정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다. 회계결산과 전년도 활동, 올해 활동 계획 자료를 만들고 회원들에게 공지 날리는 것까지 이 모두를 혼자서 해야 했다. 그럼에도 거부감 없이 일을 하는 건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서다.


크라스키노는 두만강 유역의 러시아 땅이다. 중국의 훈춘과도 가까운 지역으로 세 나라로 이어지는 길목이기도 하다. 비록 남의 나라 땅이지만 이곳의 이름을 걸고 활동을 하는 이유는 스위스의 다보스 포럼처럼 동북아에도 그런 포럼을 하나 만들어 한반도 주변국(남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공론의 장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크라스키노 위치도

크라스키노에는 유니베라 알로에 농장이 있고 그 안에 안중근 단지 동맹비가 있다. 원래는 블라디보스톡 근처에 있었다는데 일본인들이 비를 훼손하는 일이 많아 이 곳 농장 안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헤이그 밀사 중 한 분인 이상설 유허비와 발해의 염주성 유적들도 있는 곳이다. 지금은 비록 휑하다는 느낌밖에 없는 크라스키노 지역이지만 크라스키노포럼의 그런 취지는 참 멋져 보인다. 개인적으로 2015년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온 후 대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행동으로 구체화한 것이 크라스키노포럼 활동이었다. 하지만 작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경색된 후로는 소극적 활동에 머물고 있어 아쉬움이 있다.

크러스키노 전망대

박 공사님이 참석하셨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 에서 외교관으로 오랜 기간 활동하신 분이다. 오랜만에 뵈니 반가웠다. 최근 책을 한 권 집필했다며 출판기념회 일정을 알려 주신다. 부천시민연합의 박 대표님은 총회 후 진보 집회에 참석할 예정이라 하시고, 김 교수님은 일요일 중앙아시아 출장에서 돌아왔는데 얼마나 피곤했는지 입술이 다 부르터셨다. 이사장님은 지난주 동남아를 거쳐 오셨다는데 표정이 밝아 보이신다. 그 외 바쁜 일정 때문에 의결권 위임 인원까지 합쳐 총회는 잘 마쳤다. 새삼 좀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왕 비영리 단체에서 활동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사무국장인 나의 역할이 무척 중요함을 실감했다.

주말 집회

총회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 태극기 집회 시위대에 싸여 차가 움직이질 않는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빨갱이, 공산당, 진보에 대한 증오를 쏟아내는 구호를 듣자니 다소 침울해진다. 지금 내가 하는 활동도 저들에게는 빨갱이, 공산당 활동같이 여겨질 것 같아서다.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남북이 나누어진 상태에서 섬나라 대한민국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태극기 집회 어른들은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통일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엄연히 그곳도 유엔이 인정한 하나의 나라이다. 남의 나라 정권이 무너졌다고 치고 들어가면 그게 바로 침략전쟁이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상황을 알면 알수록 대한민국은 자주성을 세우기가 참 어려운 나라임을 실감한다. 공사님을 통해 전해 들은 바로는 요즘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마치 맡겨 놓은 것 찾아가려는 형국이라고 한다. 니네들은 어차피 미국이 시키면 할 것 아니냐는 것인데 그건 정말 아니길 바란다. 개인이나 국가나 자주독립은 참 어렵고도 험난한 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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