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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Jan 05. 2021

054. 일을 하고 싶다면

새해 첫 출근이었다. 새로운 부서를 맡은 이후 공식적인 첫 근무일이었다. 전출과 전입의 인사로 어수선했고 새로운 업무분장에다 12월에 채용했던 두 사람의 경력직 출근에 따른 OJT와 경영진 부임 인사까지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퇴근 무렵엔 그냥 축 처져 버렸다. 이번 주가 지나야 어느 정도 업무의 틀이 좀 잡힐 것 같다. 돌아보면 지난해 하반기 후선으로 물러난 지 6개월 만에 다시 조직단위 책임자로 복귀한 셈이다.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그동안 다른 것 신경 안 쓰고 작은 영역의 일만 하면 되었기에 사실 몸도 마음도 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에겐 그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긴 충전의 시간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이제 지칠 법도 한 말이다. 승진한 직원이 코로나 때문에 승진턱도 못 낸다며 커피 쿠폰 선물을 주고 간다. 새로 교체된 경영진이 코로나 때문에 부임행사를 못하고 각 층마다 마스크를 끼고돌며 인사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외부 식당 이용을 자제하기에 구내식당이 붐비고 준비된 식재료가 일찍 동이 났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저녁에 식당을 이용하지 않으니 저녁에는 오히려 시내 음식점이 더 안전해 보이기도 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있지만 언제까지라는 기한이 없으니 사람들이 점점 지쳐가는 것 같다.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은 최저로 떨어졌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마는 지금은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기본소득 지원 등 매번 몇 조씩 돈을 풀었지만 결국 부동산과 주식만 활성화되고 내 생활은 어려워진 화풀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가게문을 닫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데 대한 화풀이, 마스크를 끼고 늘 불안하게 다녀야 하고 매번 삑삑 울려대는 재난문자에 짜증이 슬슬 올라와 화풀이를 하고 싶은데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신 하나 제대로 못 구하고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쌈박질이나 구경하려니 점점 열불이 나기도 하겠다.

늦게 퇴근을 하니 이제 대학 졸업반에 올라가는 딸아이가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준비를 위해 한 학기 휴학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고용시장 상황을 잘 아는 터라 반대할 생각은 없다.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답답할 것이다. 그래서 대학시절 내가 많이 따랐던 교수님이 사회진출을 앞두고 걱정하던 나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출근길 버스 정류소에 있다 보면 멀리서 내가 타야 할 만원 버스가 온다. 버스가 다가올수록 내가 저 버스를 과연 탈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그 버스가 내 앞에 정차하고 문이 열린다. 나는 어떡하든 버스에 올라타게 되고 일단 올라타면 그 버스 안에는 내 발이 서 있을 공간이 하나쯤은 있더라는 것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은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 보이면 다른 사람들도 좋아 보인다. 모두가 좋아 보이는 곳은 경쟁도 심하고 그 진입장벽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법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스스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니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할 생각이라면 딱 기간을 정해서 준비하고 그 기간 안에 성과를 못 내면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는 굳이 거기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많다. 내가 그곳만 바라보기에 다른 곳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일에 대해서 가지는 열린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에 대해선 법륜 스님의 삭발 이야기가 생각난다.

법륜 스님은 출가 후, 20년을 승려가 아닌 재가 법사로서 활동하는데 90년 말에 스승 도문이 "인제 들어와서 활동을 해라." 하였다. 이에 법륜이 "스님, 도에 무슨 안팎이 있습니까?" 묻자, "도에는 안팎이 없지." 답했다. 그러자 법륜이 묻기를 "그런데 왜 자꾸 안으로 들어오라고 그러십니까?" 도문 스님이 "네가 밖을 고집하니까 안이 생기지."라며 응했다. 법륜은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안팎이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밖을 고집하는 자신을 보았다. 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삭발을 하였다. / <나무 위키> 참조

일을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근무하고 싶은 것일까. 먼저 그것의 선후가 명확해야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된 자세로 일을 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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